<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넘어져서 왼쪽 무릎이 쓸렸다. 생각보다 상처가 커, 약국에 가서 연고를 샀다. 약사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을 잘 챙겨바르면, 세 달쯤 지나 좋아질 거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약을 챙겨바르는 중이다. 20년 전 몸에 남은 흉터를 통해 배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그냥 두면 흉이 져 버린다는 것을.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아픔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주인공 영두는 중학생시절, 고향 강화도를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간다. 원서동 하숙집에 머물며 낯선 서울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영두는, 학교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다. 이 상처가 어찌나 깊었는지, 영두는 자신을 아껴주었던 문지 할머니와 남자친구 순신을 서울에 남겨둔 채, 다시 강화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영두의 상처를 되새기는 매개가 바로 원서동에 위치한 창경궁 대온실이다.
상처받은 일을 두고두고 곱씹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일을 생각하기만 해도 다시 괴로워지므로. 그러나 영두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기로 결심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영두는 대온실의 지하 배양실에 주목한다. 발굴 과정에서 우연히 사람 뼈가 발견된다. 복원 작업에 차질이 생길까 우려하며 배양실을 지하에 묻어두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두는 굳건하다. 영두는 건물 그 자체보다, 그 공간에 존재했던 사람을 복원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묻은 상태로는 전체를 알기 어렵다’고. 온실 아래에 있었던 무언가를 파내는 대신, 그대로 묻어버린다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과 다름없지 않냐고 질문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묻는 데 익숙하다. 우리를 힘들게 만든 것들을 지워버림으로써 그 고통을 삭제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 흔적들은 결국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발목을 잡곤 한다.
영두처럼 자신의 아픔을 마주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과정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결국 이들은 해낸다. 그 과정의 끝에 성장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문지 할머니의 ‘낙원 하숙집’을 되찾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대온실의 지하를 상상하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영두가 상처받은 적이 있고, 그 기억을 직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무릎의 상처가 조금 옅어졌다. 보기 싫은 그 자국을 매일 살피며 약을 바른 덕분인 것 같다. 매일 들여다보니 이제 다친 기억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반면 반대쪽 무릎의 선명한 흉터는, 늘 나를 다쳤던 그 순간으로 다시 데리고 간다. 몸과 마음에 흠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상처를 묻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과 묻어두는 사람이 있을 뿐. 상처는 소독하고 약을 발라야 새 살이 돋는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상처를 눈에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