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소금빵

by 리하

아빠는 한 달 만에 10kg이 빠진 상태로 돌아왔다. 항상 건장했던 아빠의 홀쭉해진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누워만 있던 탓에 다리는 근육이 다 빠져서 생전 처음 보는 두께였고, 기존에 입던 겉옷은 헐렁해서 어깨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빠는 병원 밥은 정말 맛이 없어, 매일 저녁 간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하루 종일 기다렸다고 농담을 했다.


아빠에겐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아빠는 산책을 하고, 억지로 밥을 챙겨 먹으면서 회복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입원 생활로 몸이 약해져 있어서, 자유롭게 움직이기는 어려웠다. 집에서 누워 있을 아빠를 떠올리면 마음이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기분이 조금이라도 좋아질까 고민하다가, 유명한 빵집에 들러서 빵을 사기 시작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아빠가 빵을 먹는 순간만큼은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빠, 요새 소금빵이 유행이래. 한번 먹어봐.”


어느 날, 집에 갔더니 아빠가 무언가를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 끝에는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조그만 오븐이 있었다. 아빠는 오븐 앞 의자에 앉은 채 내게 ‘왔냐?’라고 인사 한마디를 하고는, 곧장 시선을 다시 오븐으로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띵’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빠가 오븐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빵이었다. 모닝빵처럼 생긴 동그란 빵들이 빵틀 위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빠는 뿌듯한 표정으로 빵을 하나 집어서 내게 건넸다. 뜨거운 빵을 후후 불어 한입 베어 물었더니 계란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솔직하게 계란 냄새가 난다고 말했더니 아빠는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아차, 싶어서 급하게 덧붙였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말았다.


다음 주에 집에 갔더니, 아빠가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빵을 내밀었다. 이번 빵은 소금빵이었고, 빵에서는 계란 비린내 대신 향긋한 버터 향기가 났다.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한 소금빵을 입에 물었더니, 바삭 소리가 났다. 버터의 고소한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 맛있어서, 사 온 줄 알았다고 말하니, 아빠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엄마가 말하기를, 계란 비린내를 잡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면서 일주일 내내 레시피를 연구한 결과라고 했다.


우리 가족은 아빠를 위해 전국 빵 맛집 투어를 시작했다. 어느 빵집을 가든, 소금빵은 꼭 샀다. 아빠는 신중하게 소금빵을 반으로 찢어, 맛을 음미하고 평가를 했다. 가게마다 빵 스타일이 달라서, 식감도 맛도 다 제각각이었다. 여러 곳의 빵을 먹어볼수록, 아빠가 구운 소금빵의 맛도 널을 뛰었다. 어느 날은 A빵집, 다음 날은 B빵집 스타일이 되었다. 나는 아빠에게 진지하게 조언했다. “맨 처음에 아빠 스타일로 만든 소금빵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 결국 아빠의 소금빵은 아빠만의 그 맛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빠가 오븐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깨가 아플까 봐 말려 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빠는 꿋꿋하게 반죽을 치대고 발효를 시켰다. 삼천 원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빵을, 왜 굳이 세 시간이나 써 가며 만드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다만, 구워진 빵을 가족들에게 건네는 그 순간, 아빠가 행복해 보였기에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아빠가 만드는 빵은 점점 그럴싸해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버터가 녹진하게 스며들어 팔 수 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빵이 점점 제 모습을 갖춰가듯이, 아빠도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속도는 무척 더뎠다. 여전히 힘들어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일은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빠 대신 내가 아프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는 어깨와 손목이 아프다고 투덜대면서도, 빵 굽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완성된 빵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저마다 집을 비운 순간에, 유일하게 아빠의 곁을 지켜주는 건 빵 반죽이었다. 반죽을 만들고, 발효시키고, 오븐 속에서 동그란 빵들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 동안, 아빠는 어제보다 더 나은 빵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 빵을 만드는 모습은 때때로 아빠가 스스로를 다시 빚어내는 수행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소금빵은 먹는 데 5분, 만드는 데는 3시간이 걸렸다.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효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아빠가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갓 구운 신선한 빵 냄새가, 우리 가족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빵을 굽는 아빠와 버터와 밀가루, 우유를 사 들고 모이는 가족들. 우리는 소금빵으로 한 팀이 되었다. 함께 모여 갓 구운 소금빵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 걱정 없이 행복했다. 소금빵, 내겐 그냥 빵이 아니라, 아빠의 회복 과정을 함께해 준 고마운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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