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를 읽고
한때 라디오를 자주 챙겨 들었다. 매일 밤 변함없이 나의 밤 10시를 지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가 제일 기다린 건 목요일의 사연 읽어주는 코너였다. 자신이 겪은 황당하거나 억울한 사연을 풀어놓으면, 라디오 DJ들이 해결 방법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이 코너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아마도 누구나 고달픈 날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위로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오프닝 멘트와 청취자의 고민에 대한 답을 묶어서 출판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읽는 내내 마치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15년 전, 라디오에서 사연을 듣고 공감하며 함께 울고 웃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 찌그러질까? 책 제목 <찌그러져도 동그라미>를 보고 찌그러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았다. 찌그러지다의 사전적 의미는 ‘짓눌려서 고르지 않게 우그러진다’라는 뜻이다. 빈 종이에 동그라미를 열심히 그려 봐도, 우그러지지 않은 완벽한 동그라미는 몇 개 없다. 작가 또한 여기서 착안해,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청취자에게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이라며 위로를 건넨다.
완벽한 하루가 예쁜 동그라미라면, 일 년 중에 동그란 날은 열흘도 채 안 될 것이다. 인생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아 힘들 때도 많지만, 오히려 재밌게 느껴질 때도 있다. 마치 게임 속에서 새로운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를 더 완벽한 동그라미에 도전하는 계기로 삼는다는 작가처럼, 매일을 어제보다 나은 내일로 만들기 위해 도전하며 살면 어떨까 싶다.
나의 인생에서 찌그러진 순간이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실패했던 순간들이 먼저 떠올랐다. 중요한 시험을 망쳤을 때, 인간 관계가 어렵게 느껴졌을 때, 예상치 못한 사고에 휘말렸을 때 내 인생이 구겨져버린 것 같았다. 신기한 점은, 그렇게 힘들어서 무너져 내릴 것 같던 날이 결국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그때 나를 일으켜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모습이 비슷함을 깨달았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인생은 없으며, 몇 개가 찌그러지더라도 나는 여전히 세모가 아닌 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구겨진 종이를 펼 수 있듯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배우면서 스스로를 다시 펼쳤다. 구겨진 자국은 남았지만, 찢어지지는 않았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완벽함을 내려두고, 좀 여유롭게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현대인들에게 여유를 가지라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다만, 어려움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도 느낄 수 있다. 삶이 완벽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일단 동그라미를 계속 그리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다 보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조금 더 잘 그리게 될 수는 있으니까.
이 책은 단순히 위로를 전하는 글은 아니다. 청취자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읽고, 담담하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일 뿐이다. 담백한 문장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작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직접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아도, 작가의 깨달음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배운다.
여러 오프닝 글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글이 있다. ‘늘 뭔가를 찾아다녔던 것 같아요. 근데 크면서 그게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걸 느꼈습니다. 지루한 뭔가를 지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것,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없더군요.’라는 문장이다. 이십삼 년간 매일 아침 9시에 라디오 방송을 하는 삶이 때로는 지루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라디오 오프닝까지 매일 직접 썼다고 한다.
‘융통성’이라는 말 아래에 요행을 잘 부리는 게 똑똑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생에 반복의 과정도 필요하다는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위안을 준다. 세상에 순탄하게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삶의 모양은 달라도 누구나 힘들게 살아간다. 다만, 힘듦을 회피하는 사람과 내색하지 않고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글마다 감사하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도 감사한 대상을 발견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게 된다. 특히, 어제가 깔끔하게 떠나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인상적이다. 어제가 떠나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 오늘이 완벽한 하루였대도, 망쳐버린 하루였대도 오늘은 결국 지나가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일 지도 모른다.
라디오 프로그램 아침창의 클로징 멘트는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다. 매일 아침 9시에 라디오를 틀면 익숙한 DJ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라는 확신은 그 자체로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다. 오늘 찌그러졌더라도, 내일 다시 동그래질 수 있는 게 인생이다. 우리가 할 일은,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