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대하여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도 여행할 수 있지 않나? 마음은 당장 어디라도 떠나고 싶은데, 학기 중에 갈 수는 없으니 답답함에 여행하는 기분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 오는 관광객들은 주로 어디를 가지? 아, 명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객의 기운을 받으러 무작정 명동으로 향했다.
4호선을 타고 명동역에 내리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외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이곳은 한국인데, 한국이 아닌 것 같았다. 개찰구 근처에서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거나, 셀카봉을 꺼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관광객들을 지나쳐 간신히 명동역을 나섰다.
일단 명동 거리를 걸었다. 분명 익숙한 도시의 풍경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가게 앞마다 펼쳐진 일본어와 중국어 안내판, 들려오는 낯선 말들, 환전소까지... 정처 없이 인파에 떠밀려 길을 걷다가, 관광객이 많아 보이는 한 의류 매장에 들어갔다.
옷을 입어보려고 하는데, 피팅 룸 문이 열리지 않아서 문과 씨름하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직원이 나를 향해 친절히 말을 건넸다. “Don’t push. Pull the door, please.”. '한국인인데요' 하고 말은 못 하고 알아들은 척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오해받다니, 어색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명동 중앙길을 걷는데, 어디에나 있을 법한 무채색 빌딩들 앞에서 들뜬 표정으로 셔터를 누르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홍콩에서 익청빌딩에 갔던 때가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에서 홍콩 필수 포토 스팟으로 소개되던 그곳은, 필터가 빠지자 빨래가 널려 있는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만 보였다. 살아가는 사람들과 관광하는 사람들이 뒤섞였던 이질적인 장면이 눈 앞의 명동 풍경과 겹쳐 보였다.
매일 빠르게 지나치기 바빴던 익숙한 이 도시의 풍경이, 누군가에겐 비행기로 날아와 기록하고 싶은 반짝이는 장면이 되었다. 결국 여행이란 공간 그 자체보다는 시선의 이동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누군가의 인생샷 명소가 되듯, 일상과 여행의 차이는 풍경 속에서 낯섦을 발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반나절짜리 짧은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여행이란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익숙함 속에서도 생경함과 뜻밖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일상 또한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간을 옮길 수 없다면 시선을 바꾸어 보는 것, 이것 또한 충분한 여행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