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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모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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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지 Nov 30. 2019

일년만의 목욕탕과 세신사 아주머니의 손길

목욕탕 수필

아기를 낳고 내가 제일 하고싶었던 건 뭐 대단한 게 아니라 바로 목욕탕에 가는것이었다. 주말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을 행하던 개인적이고 고요했던 장소. 그러나 대중목욕탕은 삼가하라는 산부인과 의사쌤의 말을 이렇게나 오래 (무려 10개월) 잘 듣고 이제 드디어 목욕탕 갈 날만 기다린것이다. 모처럼 연차휴가인 남편에게 유축수유를 부탁하고 아예 마음 푹 놓고 오래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선언하니 마음이 편했다. 모유수유 직수가 아니라 유축을 하는건 그도 나도 처음이라 잔뜩 긴장한 신랑을 뒤로하고 우리동네 단 하나뿐인 대형목욕탕으로 향했다. 가을비가 내렸다.


국내 최고의 시설 ! 최고의 써비스! 궁중보석목욕탕! 24시간


손님을 반기는 저 희한 문구가 희하게도 반갑게 느껴지며 새삼 감격에 젖어 글자 하나 하나를 천천히 음미한다. 국내 최고의 시설, 최고의 써어비스를 자랑하는 목욕탕 안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탈의를 하니 몇년간 보아왔던 얼굴의 아줌마가 곳곳을 누비며 정리를 하고 있네. 오랫만에 보는 익숙한 얼굴에 너무 반가워 나도모르게 입까지 겁나게 크게 벌린 미소를 보내버렸다. 아줌마도 답례 눈인사를 해준다 (아줌마는 나를 모르는것같다.) 순간 아줌마를 붙잡고 제가 출산을 하고 1년만에 목욕탕에 왔어요! 아줌마 저 아세요?? 되게 반갑네요??? 라고 막 너무 말하고싶은거다... 정신줄을 붙잡고 그러지 않기로 하고 유리문을 밀고 수증기 가득한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일년만에 왔어도 이미 국내 최고라 그런가 더이상 업그레이드 된 시설이 단 한군데도 없었다. 너무나 그대로인 목욕탕에 오히려 놀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래서 좋았다. 그대로여서 마음이 놓였다.


전신거울 속의 내 젖꼭지가 달라져있다. 나의 갓난쟁이와 고군분투한 흔적이 이렇게 적나라했다니. 찢어졌다가 아물었다가 헐었다가 다시 헐어서 색이 허옇게 바래있었다. 보통 이런걸 보면 여자들은 우울해진다고 하더만.. 그런 감정이 들지도 않았다. 딱히 누구 보여줄것도 드러내고 다닐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름답진 않았지만 오히려 어쩐지 내심 뿌듯했다. 이건 훈장같은거다, 혼자만의 훈장으로 간직해야지, 바라보았다.

고군분투의 뜻을 아시는가?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된 군대가 많은 수의 적과 용감하게 잘 싸운다는 뜻이다.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적은 인원으로 힘에 벅찬 일을 잘해 나간다는 뜻이다. 두달 반동안 오직 혼자서 힘에 벅찬 모유수유를 유선염과 싸워가며 잘해 나갔다. 나는 이제 아줌마인것이다. 거울을 보며 아줌마로 다시 태어난 헐고 찢어진 젖꼭지를 가진 나를 덤덤하게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를 옮겼다.


다시 마음이 들뜬다. 그토록 오고싶었던 목욕탕. 안개 자욱한 목욕탕에서 순간 너무 신나버린 나머지 막 일면식 없는 이사람 저사람들을 붙잡고 저 출산하고 일년만에 목욕탕에 왔어요!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이렇게 알려주고싶은지. 저 출산하고 왔어요. 저 오랫만에 여기 왔어요.


궁중보석사우나에는 온탕이 5개가 있는데 제일 낮은 온도의 보라색 허브탕부터 들어가 몸을 녹였다. 물에 들어가는 내 몸이 걸쭉한 신음을 내뱉었다. 아아아아  

이 순간. 완전 소중하자나. 그 때 한 할머니가 물 속을 누비며 주변인에게 고구마 맛좀 보라며 몇명에게 건내고있었다. 먹고싶어하는것처럼 보일까봐 안쳐다보려고했는데 먹고싶어서 저절로 쳐다보게되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나에게도 고구마를 건내주었다. 할머니가 이건 보라색 고구마야. 라고 하셨다. 대박이게뭐에요! 저 이런거 처음봐요!!! 한입 물었는데 찐득거리면서 떡같으면서도 부드러운 그런 맛이 났다. 대박. 너무맛있어요! 이게뭐에요! 라고 울부짖자 할머니가 특별히 하나 더 주셨다. 기필코 더 달라고 오바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더 따뜻한 39도의 온탕으로 옮겨갔다. 이 목욕탕에서 가장 큰 탕으로 이곳에선 피곤한 아주머니들이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개구리처럼 둥둥 떠다니고있었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아 나도 함께 등을 구부리고 물 속을 둥둥 떠다녀본다. 대신에 나는 웃는 얼굴이었다. 일년만에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얼마나 고대한 날이었던가. 아기를 두고 는게 내 딴에는 얼마나 크게 마음먹은 일이던가.


목욕탕 가기도 힘든 젖먹이 산모가 목욕탕에 갔으니 꼭 때밀이도 받고오라는 식구들의 말에 힘입어 세신코너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세신은 2만 5천원. 미니마사지는 5만원. 샴푸까지 포함.

지금의 나는 온몸의 근육과 뼈마디가 아픈데 어디가 아픈가 짚어보니 대략 목과 어깨, 등, 허리, 엉덩이와 발목, 종아리, 발 정도였다. 오만원 짜리로 결정한다.

이 탕 저 탕에서 둥둥 떠다니다 다가온 내 차례. 세신사님께 제가 젖먹이는 중이라 가슴이 무거워서 엎드리면 아프니 수건 좀 깔아달라고 한 후 오랫만의 세신에 괜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조신히 때밀이침대 위에 내 몸을 눕혔다. 그냥 다 좋았다.


세신사님이 궁금한 표정으로 아기 낳은지 얼마나 되었어? 라고 물어보셨다.  70일 정도 됬어요 히히









힘들지?








...




예상치 못했던 아무것도 아닌 저 말 들어왔다.


 



...우와씨.   알지도못하는 세신사 아줌마의 이 한마디 때문에 갑자기 때밀이 식탁 위에 발가벗은채로 누워서 엉 엉 울뻔했다.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있다. 애써 눈물을 참고.


모든걸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출산에 대해 수유에 대해 아기에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반응하신다. 그리고 나는 마치 이걸 물어보지 않았으면 어떡할뻔한 사람처럼 속사포처럼 고충을 쏟아내었다.


아기가 먹일 시간이 되니 한쪽 가슴이 자연스럽게 팽창하고 그 압력으로 젖이 샌다. 아줌마가 아프지않게 수건을 대어준다. 엎드린채로 느낀건데 내가 산모라서 더 정성을 다해 나를 만져주신것 같았다. 꼼꼼하게 때를 밀어 주시고 마사지도 미니마사지가 아니라 몇배로 정성스럽게 몸을 만져주셨다. 수유자세때문에 여기가 아플꺼라며 목 뒤도 더 꾹꾹 눌러주셨고 거기다 대고 나는 전 사실 등이 많이 아파요 라고 말한다. 아직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몸이라 굉장히 조심히 다루셨고 그 와중에 또 시원하게 해주고 싶어서 마음을 쓰시는게 느껴졌다.

왠지 그런 느낌이었다. 자기도 고생해서, 어쩌면 옛날 생각이 나서, 잘 해 주는게 아닐까. 그렇게 아기를 낳은 여자들끼리 밀접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나누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보았다.

 


맨날 애기만 씻겨주다가 제가 씻김을 받으니까 너무 너무 좋아요. 

진심이었다.


아줌마가 때밀고싶으면 홀수날에 오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앞으로 자주 때가 밀고 싶어지겠지.

친정엄마도 없는 서울이라는 이 곳에 누군가 내 몸(어쩌면 마음)을 만져주기 바랄 때, 그냥 쉬고싶을 때에, 나에게도 갈 곳이 생겼구나.  







늘 갔었던 너무나 익숙한 장소가 다른 차원의 위로로 다가 온 하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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