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다. 바로 향하여 보다. 바르고 곧게... 보다.
해온이(3개월 시작)가 시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시기는 시력이 발달해서 움직이는 물체를 쫓아가며 보기 시작한다고. 나는 아기가 거의 못 보는 채로 태어나는지 몰랐다.(이것 말고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지...) 자기 눈 앞 20센티밖에 못 본다고 했는데, 이제는 나름 3개월 사셨다고 정말로 "보이기"시작하나 보다. 하루 종일 "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눈 뜨고 깨어있는 순간은 보느라 아주 바쁘다. 원래 먹고-자고-똥 싸고의 삶이었는데, 이제는 먹으면서 보고, 똥 싸면서 보고, 더 보고 싶지만 기절하여 잠자는 삶을 사는 것 같다.
이제야 겨우 가누기 시작한 고개를 위태롭게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나에게 안겨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여기도 봐야 되고 저기도 봐야 되고 내 품안에서 아주 잔뜩 긴장해 있는가 하면 그러다가도 대놓고 쳐다보느라 고개를(흔들흔들 겨우 목가누며) 최대한 꼿꼿이 들어본다. 아주 최전방을 지키는 군인이라면 상 받아야 할 정도다.
젖먹이기도 힘들다. 급작스럽게 배고프다고 온 몸을 버둥거리며 울어제껴서 데리고와서 수유하고 있자면 아기는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그 새카맣고 깊은 눈동자로 그새 또 딴 데를 보고 있다. 신생아때는 눈도 못뜨고 두 눈 꼭 감은 상태로 젖 먹는 것에만 목숨 걸더니 이제는 새롭게 취득한 능력을 사용하시겠다며 젖 먹으면서 사십오도 위쪽을 쳐다봤다가 사십오도 아래를 쳐다봤다가 급기야는 입을 딱 떼더니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서 뒤에도 뭐 볼게 그리 있는지 또 뒤를 살폈다가(뒤에는 그저 이불이 있었다) 다시 먹는 걸 이어간다. (본다고 안먹을때가 더 많아졌다. 속터진다.)
아기 성격마다 다르다는데 어떤 아기들은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는 게 너무 많아서 두려움에 덜덜 떠는 아기들도 많다고 한다. 여기 쳐다봤다가 막 보이니까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고, 저기 쳐다봤다가 너무 막 보이는게 많으니까 또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고.
하루 종일 고개 돌리면서 오들오들 떠는 아기라니.. 안쓰럽고 귀엽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마귀 생긴 게 무섭듯이 이 아기들한테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서랍장이 눈앞에 나타나면 얼마나 무섭겠냐 이 말이야.
해온이가 보는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재우는 난이도도 힘들어졌다. 아기가 잠이 와서 졸려 죽으려고 하는 와중에도 더 보겠다고 좁은 방 여기와 저기를 살피느라 쉽사리 자지 않는다. 나중엔 힘 다 풀려서 품 안으로 폭 안겨서 있는 와중에도, 그 와중에도... 눈만은 감고 싶지 않아 한다. 잠자면 이제는 더 이상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기의 시선은 어른들의 시선과는 사뭇 차원이 달랐다. 맑은 영혼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영어로 우리들은 "see" 하고 있다면 아기는 "whatch" 또는 "looking at" 하고 있달까.
그냥 보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본다. 바라본달까, 응시한달까.. 눈길을 준달까.
어른들의 "보기"와는 다른 아기의 "바라봄"에는 뭔가가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깊게 관찰했다. 지켜보았다(시간과 관심을 기울이며). 주의를 집중하여 보았다. 아기의 집중은 고요하고 깊은 물길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것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시선이란 단어를 사전 찾아보면 전문어(생물)로 "눈동자의 중심점과 외계의 주시점을 연결하는 선"이라는 뜻이 있다. 재미있고 흥미롭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과 내 눈동자 사이의 그 선. 그건 아마도 어떠한 에너지를 품고 있겠지. 나의 바라봄과 바라봄을 받는 대상. 주고받는 그 기운.. 아무튼 가만히 바라본다는 것이란.
그렇게 바라만 보는 것도 에너지가 나가는 일이구나 라고 깨달았다. 시선이 오래 머물 필요가 없는 것들은 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응시하는 것의 아름다움이랄까 가치가 더욱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갑자기 결론 미니멀리즘? 갑분 미니멀?
바라보다라는 말은 바로 향하여 본다는 말인데 이 "바로"라는 단어는 바르게. 곧게. 가 아니던가. 또 정확히. 틀림없이. 똑바로 라는 뜻이다. 아기의 시선은 그러했다. 바르게 곧게. 정확하면서 틀림없이. 똑바로 바라본다.
나는 마음에 새겨두기로 한다.
그리고, 나도 저런 시선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하는 나의 아기에게서 배운 시선.
가만히 머무는 시선, 깊게 응시하는 바라봄... 우리 아기에게서 내가 배운 것 한 가지.
아무것도 허투루 보지 않겠다. 대수롭지 않게 보지 않겠다. 아무렇게나 스쳐가지 않겠다. 저런 눈빛으로, 정면으로 응시하겠다.
아기침대를 스쳐지나 여기저기 정리 중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 몰랐다.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재밌어서 여기로 갔다 저기로 갔다 해본다.
불쌍하게 몸은 못 움직이고 시선은 나만 쫓아다닌다.
나와 눈이 마주칠 때는
배시시
미소 짓는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