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환기

10.31 일기

by 여란지

한없이 무겁고 끔찍한 기분에 휩싸여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육아인이니까, 에너지를 보전해야만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젯밤에는 정서적 환기를 위해

오랜만에 잔뜩 주문해놓았던, 설레는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박효신 노래도 듣고~


그 와중에 조금 웃겼던 건,

힐링을 위해 유튜브로 성시경도 검색했는데.

성시경 검색하면 이제 노래가 나오는 게 아니고

먹을텐데가 더 많이 떠서 웃겼다. ㅋㅋ



봄에 글온이를 낳고 유쾌했던 나는 여름에 가족끼리 놀러 많이 다니면서 흥겨웠지만

가을의 나는 우울했다.

육아를 한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도 지쳐있었는데

지쳐있을 때 의지할 데가 없다는 사실이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소한ㅋ 예를 들자면 예전엔 친정 옆에서 덕보는 다른 육아인을 보거나 만나게 되면 한없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부러운 시기를 지나 내 처지가 짜증이 치미는 시기랄까

모든 걸 나 혼자 다 해야 된다는 사실이 버거웠나 보다.

기본적으로 잘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내 삶의 베이스다.

나는 언제나 잘하고 싶었고 잘해왔기때문에

처음으로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시기가 조금 견디기가 힘들기도 했나 보다.

그래서 지치고 그랬나 보다.

그럴수록 더욱 긍정성을 발휘했다.

인스타를 한다면 일부러 웃기게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몹시 지치고 우울했지만 - 밝고 유쾌하고 즐겁고 웃긴 일상을 최대한으로 뽑아냈다.


그러다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그게 툭 끊어진 느낌이다.

이제는 애써 밝게, 그러고 싶지가 않다.

계절감도 있으려나 , 겨울이 와서 그런가.

가라앉아있다.

물론 내가 한없이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세월호 때처럼, 정인이 사건때처럼,

정보를 적절히 차단하고 나를 북돋는 일들을 계속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조금 침잠해보고 싶다.

이번 기회에 말이다.

겨울이 오기도 했고 말이다.






해온이의 목욕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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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새로운 도구들을 준비해주면 참 잘 논다.

글온이를 재워야 했기에,

글온이가 자는 동안 해온이 디즈니채널을 틀어줬는데

글온이가 너무 못 자서 (시간이 가고 있으므로)

포기하고 해온이를 목욕탕에 넣었다.



아 얼마 전에,

글온이가 자는 40분여 동안

해온이와 거품목욕을 했다.

물을 많이 쓰는 건 죄스러워 저렇게 다라이에 애를 넣어놓고 목욕을 시키는데 ^^

(저렇게 해야 피로가 풀릴 것 같기도 하고 또 저렇게 물에서 놀 수 있어야 아이도 재밌어하니까

탕을 포기할 수는 없고)

오랜만에 욕조 가득 물을 받아 해온이를 껴안고 목욕을 했다.

정말 행복했다.




그런 시간이 좀 많았으면 좋겠는데

독박 육아인은 그냥 하루가 지나간 걸 감사해야 하나~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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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오늘 먹은 늦은 저녁.

남편이 비빔밥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든다.

늦게 먹는 저녁이 또 내 낙이다.

요새 내 낙이 몇 개 있는데

커피 사 먹는거랑~

야식인데~

너무 아줌마 같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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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항상 되고 싶었던 여성 스타일에 이런 스타일이 있다.

이번 생은 글렀나~ ㅎㅎ







나는 <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가 그래도 선진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올해

반지하에 사는 분들이 문을 못 열어 물에 잠겨 죽고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던 분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거기 그대로 숨졌다.

10대 20대, 그저 어릴 때부터 할로윈에 익숙해서 옷 입고 사탕 받는 거 익숙한 아이들이

코로나에 억압돼있다가 드디어 놀러 갔다가

한껏 들떠 열심히 꾸미고 갔을 텐데

정말 말 그대로 숨도 못 쉬고 길에서 깔려 죽은걸 보고

세상은 위험하고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그런 마인드가 생겼다.


그리고 내가 오랜 세월 동안 즐겁게 읽었던 블로그 이웃을 손절했다.


죽어도 싼 것 같다고 그런델 왜 가냐고 쓴 걸 보고 소름이 끼쳐서 이웃을 끊어버렸다.

더 이상 그 사람의 글을 읽고 싶지 않다.


어디를 가든 그 사람들의 자유인 것이다.

아이들이 숨을 못 쉬고 길에서 죽었다.

친구들을 살려보겠다고 혹시나 숨이 돌아올까 봐 한 시간 반을 씨피알을 했단다.

그 생지옥 속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얼마나 간절했을까.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이 좋아서 살려고 왔다가 죽으니 갈 병원도 없단다.

나는 최소한 마음 아파할 줄 아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참담한 일을 맞이하고

가까스로 멘탈을 붙잡고 있으나

그래도 위안으로 다가온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 집이다.


예전엔 깨끗한 나의 집만이 위안이었고

폭탄 맞은 우리 집은 스트레스였다.


그렇지만 이제는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집도

참 ..... 눈물 나게 고맙다.


이 거친 세상에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안식과 쉼을 주는 곳이구나.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고 내 space가 언제나 허락되는

나의 공간이구나.

이 자리를 잘 지켜가야겠구나.




이런 저런 마음의 변화를 겪으며

블로그로 돌아왔다.

블로그도 항상 그랬으니까

2011년부터

언제나 내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던

고마운 나만의 공간이니까.





+

좋은 소식.


그림을 정식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글온이가 어린이집이 되어서

아직 본격적으로 다니기는 어리니까 하루에 2시간 또는 세 시간 정도만 보내는데 (젖을 안 떼서 젖먹이고 보내고 3시간 전에 젖 먹기 전에 찾아야 됨 ㅋㅋ)

문화센터에서 목요일에 소묘 수업, 금요일에 수채화 수업을 등록했다.

원래 훌라댄스와 살풀이를 신청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다 취소하고

그림으로 몰았다.

별로 춤을 추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하고 싶지만

하나만 해야 되니까!)

나는 올해, 내년 그림을 그리고 싶은가 보다.


그래서 아무 맡길 곳이 없는 나에게

맡길 곳이 생겨서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그림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 말이다 :)




+ 올해는 정말 힘들어서 쓰지 못했다.

그런데 그림은 자주 그렸다.

그래서 올해는 신춘문예가 아닌 그림책 공모전에 도전했다.

글도 그림도 정말 나는 아직 솔직히 도전한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모자란 수준이지만

두고 봐라~~

내 인생이 내 앞에 있으니까.

천천히 오래 걸을 테다.




++


또 책 읽으러 가야겠다.


소설가 김연수의 신간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그 유명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를 왔다갔다 하며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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