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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지 Jan 06. 2023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1/5

치유의 물





1.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육아에 권위 있는 사람, 그중 내가 정말 마음에 들고 진실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 그 방법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재울지, 수면에 최선을 다했고 또 어떻게 (무엇을 이 아닌) 먹여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도 많이 받아들이고 따라 하려고 했다. 둘째 아이에 와서는 내가 훅 늙었는지 나와 엄마의 관계를 계속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니까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

육아를 어떻게 하는지 같은 세세한 부분 말고

크게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2.

우리 엄마는 나에게 어떤 엄마인가.

내가 바로 떠올리는 우리 엄마는 호랑이 같은 엄마다. 화가 나면 호랑이처럼 무섭다는 뜻이 아니라 (물론 호랑이처럼 개 무서웠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용감하여져서 모성애를 발휘하여, 미친 듯이 사냥꾼에게 덤벼드는 성질을 가진 점에서 호랑이다.

내가 아주 어릴 때나 학창 시절 때나 심지어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애도 엄마는 새끼인 나를 보호하는 호랑이 같은 엄마였다. 호랑이 엄마? 그러니까 암컷 호랑이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절대 일직선으로 보금자리를 찾아가지 않는다고 한다. 적에게 노출되게 하지 않기 위해 바위를 밟고 다녀서 자신의 발자국을 감추려고 노력한다. 그런 것도 꼭 엄마 같다. 물론 자식새끼인 나는 너무 칠칠맞고 팔불출이라 내가 나 자신을 광고하고 돌아다니지만 말이다.

내가 신기가 있는 건지 (확실히 없다.) 몇 년 전 엄마가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할 때 엄마 사주풀이 상담을 보러 갔을 때 사주 선생님께서 사주를 딱 보더니 지 새끼 죽을 때까지 보호하는 호랑이 같은 엄마라고 말했다. 그때 표는 안 냈지만 속으로 심장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

3.

또 다른 의미로 호랑이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게 우리 엄마이다. 평소에는 그냥 살갑고 성격 좋은 (때에 따라 겁나 까칠한) 아줌마 같은데 화가 나면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한 가지 예로 (나에게는 정말로 수십 가지 예가 있다) 나는 여자 사립 중학교를 다녔었는데 1학년때 도덕 교사에게 처맞는 학교폭력을 당했다. 그날 즉시 엄마는 정말 멋지게 차려입고 학교로 찾아가서 학교를 밟아 놓으셨다. 그 도덕 교사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정도로 쪽을 팔렸다. 엄마가 돈이 많은 것도 빽이 많은 것도 큰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우리 엄마에게는 항상 그런 카리스마와 힘이 있었다. 그런 엄마이기에, 나는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지만 엄마가 정말 멋있었다.  

4.

나는 서울에서 혼자 육아를 하고 엄마는 멀리 부산에 있는 데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급격히 무너져 나를 많이 도와줄 수가 없었다. 나는 친정이 곁에 없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최근에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을 겪었다. 긴 이야기를 생략하고 결론만 이야기하면 나의 존엄을 엄마가 다시 돌려주었다. 어릴 때처럼 엄마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미성년자인 나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었지만, 엄마는 역시 내 엄마여서, 존재만으로도,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필요한 말들을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나를 살렸고 나를 보호했고 나를 왕좌 위로 올려주었다.


너는 내 딸이란다.

너는 "감히" 아무나 건드릴 수 없고 건드려 지지도 않는단다.


이런 감정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건 누구도 쳐들어올 수 없는 호랑이 굴 안에 있는 안전함이었다.

그 안전함을 엄마와 함께 있는 일주일간 온전히 누렸다.

그리고 엄마가 된 나는 생각해 본다.

5.

해온이와 글온이가 자라나면서 내가 이 아이들의 옆에 있어주면서 나는 어떤 엄마가 돼 줄 수 있을지 아직 나는 알지 못한다. 우리 엄마처럼 호랑이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인이 잘못한 상황에서 조차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앉아있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수성이라는 걸 타고나버려 타인의 입장을 항상 배려하려 하고 무엇보다 공감을 너무 잘해버려서,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 엄마처럼 "다 필요 없고" 내 새끼 다치게 하는 인간들은 때려죽인다 모드로 덤벼드는 엄마의 카리스마는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본능적 느낌적인 느낌은 있다. (정말 갖고 싶은 콸리티이다)

 


6.

나는 해온이와 글온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이것은 앞으로 남은 내 삶에서 나에게 주어진 아주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과제 같은 것이다.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 이후로는 예전처럼 오늘 하루 뭘 먹였는지, 어떻게 재웠는지, 젖을 얼마나 먹고 안 먹었는지, 교과서에서 하지 말라는 젖물잠을 했는지 이유식은 어떻게 했는지, 책을 읽어주었는지 얼마나 놀아주었는지 그런 모든 것들에서 정말이지 홀가분해졌다.

앞서가는 멋진 교육을 못해주어도,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는 게 부족함이 있어도,

살림에서 여러모로 서툴러도, 나도 우리 엄마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죽을 때까지 이 아이들을 보호해보려고 한다.

엄마가 나에게 준 자존감, 그걸 이어 줄 수 있고

엄마가 나에게 준 든든함을 아이들이 살아가며 보호막처럼 느낄 수 있다면 세세한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는 새해의 밤들이다.


7.


내가 느낀 결론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들이 좋은 아이들이 되려고 노력해서 좋은 자식들이 아닌 것처럼,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좋은 엄마이다.

나에겐 그런 자격이 있었다. (엄마의 존재로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러니까 결론은,

새해에는 그저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는 것.

좋은 엄마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까라는 인텐션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된다는 것.

모두에게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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