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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ie n Tahoe Aug 25. 2023

1주일 후 그만뒀습니다 첫 로컬 잡

“You should be humble.”

투자와 저금 양쪽 모두 재능이 없었던 사회초년생, 정부의 청년 지원 정책이 없었다면 그 작고 귀여운 월급으로는 해외살이 할 엄두도 못 냈다. 누군가는 주식 통장으로, 전세대출 또는 결혼 자금으로 투자할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 돈은 겨우 반년 간의 캐나다 생활비가 될 것이었다.  


나의 체크박스는 1) 영어로 소통하고 2) 집과 멀지 않으며 3) 육체적 노동이 최대한 적고 4)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었고 이 모든 조건을 갖춘 잡을 구하기란 비현실에 가까웠다.

온라인에 익숙한 세대로서 구인 시장에서 발품 팔기, "레쥬메 드랍"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시네마, 카페, 그리고 각종 리테일 샵까지 피땀눈물로 만든 이력서를 수없이 보내봤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첫 번째 인터뷰

자존감이 바닥을 뚫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한인 회사의 사무직으로 첫 면접 기회가 주워졌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으리으리한 빌딩에 도착하자마자 깐깐하게 세웠던 조건은 까맣게 잊은 채 입사 욕구가 치솟았다. 1년짜리 퍼밋 소지자 고용하기를 지양하지만 내 이력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 회사에서 잡 인터뷰라기에는 너무나 편안하게, Canada Place가 보이는 룸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100% 합격을 예상했지만 2주, 3주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다시 구인시장으로 복귀해야 했다.



두 번째 인터뷰

"캐나다 가면 그곳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다 이유가 있을 테니까. “

개복치 같은 내가 캐나다로 오기 전 병원 순례를 돌 때 들은 조언이 생각났다. 랩탑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이력서 첨삭을 위해 방문한 Work BC 직원은 내 이력서가 너무 완벽하니 조금 비워보자고 제안했다. 한국 영화 시장에 드밀었던 그 치열한 이력서가 아니라 알바천국 이력서에 가깝게.


딱 하루만 눈감고 해 보자. 몹시 캐.내.디.언스러운 이력서 10장을 출력해 보부상 가방에 찔러 넣고, 다운타운 카페 곳곳에 걸어 들어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 날, 가스타운의 한 카페에서 연락이 왔고, 일본계 캐내디언이라고 생각했던 한국인 오너와의 인터뷰가 잡혔다. 결과는 합격이었지만 개인이 존중받는, 유연한 캐내디언 직장 문화에 대한 환상을 깨부순 한 마디, “You should be humble."

돈은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찝찝함은 잠시 접어두고 곧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짧은 시간 경험한 오너의 태도는 더욱 최악이었다.


손님 앞에서 직원에게 큰소리치는, 한국인을 믿지 않는다는 서툰 영어의 한국인. 다행스럽게도 6일 후 마케터, 어드민 오피서로 두 회사에 합격했고 통쾌한 마음으로 그 카페를 다시 걸어 나왔다.


길고 험난한 과정 후 만난 지금 회사의 장점은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감 있는 동료들, 매일 영어를 쓰고 읽고 말하는 환경, 그리고 역세권!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아닌 새로운 일이 여전히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지난 과정을 이렇게 글로 써보니 부정의 꼬리를 물고 물던 생각을 멈출 수 있어 좋다. 요즘 나는 Office On, Off 모드를 확실히 한다.  주말뿐만 아니라 퇴근 후의 나에게 더 집중해서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먹고, 꿈꾸는지 알고 싶다. 필요보다 더 애써서 힘들었던 시간보다는 내가 만든 더 나은 결과를, 누군가 또는 어딘가에서 비롯된 기준보다는 내가 만든 나에게 맞는 기준을,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화장실 뷰가 좋은 우리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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