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이 우리에게 남긴 것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by 책선비

유시민 작가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화제가 된 <아버지의 해방일지>(창비, 2022)는 <빨치산의 딸> 소설을 쓴 정지아 작가의 최신 작품이다. 좌파, 빨갱이라며 보수주의자에게 수많은 공격을 당하는 두 사람이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삶을 그린 소설을 언급하다니 조금 의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사회주의자를 찬양하는 책이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으로 의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된 딸이 이야기다.


정지아 작가는 1965년 전남 구례 태생이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출간하며 활동을 시작했으나 책이 국가보안법에 위배되어 판매금지 조치를 당했다가 2005년 복간되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후 <행복>, <봄빛> 등 소설집과 <벼랑 위의 꿈들> 르포집을 발표했으며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리얼리스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속의 아버지는 바로 작가의 아버지와 100퍼센트 동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인 ‘아리’는 실제 작가와는 조금 다르다. 작가는 빨치산 딸이라는 낙인으로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대학생 때 역사를 배우고 난 뒤 부모님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에서 ‘아리’는 이데올로기의 간접적 희생자이면서도 사회주의자에 대한 오해를 가진 인물로서 이념을 향한 일반 대중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생각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원래 이념의 뜻과 관계없이 ‘북한’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공산주의자’로 몰아서 불법으로 간주한다. 2014년에 헌법 재판소는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3개의 진보당이 하나로 합병했던 ’통합진보당’을 ‘북한의 대남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종북정당’으로 규정하며 해산 결정을 내렸다. 이는 신념을 작위적으로 판단하는 ‘악법’을 이용하여 진보 세력을 억압하고 축출하기 위한 보수주의자들의 정치적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념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이념을 이용하는 세상이다.


오히려 소설 속 아버지는 사회주의가 아닌, 인간을 품고 역사의 진보를 믿었던 그 신념대로 살았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다. 동네의 크고 작은 일을 감당하면서 때로는 남의 보증을 대신 갚는 등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아버지는 저 말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는 그 “사램”들이 찾아와 조문을 한다. “사램”들은 남녀노소,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울렸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각자를 억압했던 삶의 문제에서 해방을 맛보았던 경험을 풀어놓는다. 딸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살아 숨 쉬는 ‘진짜 아버지’를 만났고, 철저하지만 모순적인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로부터 상처받았다는 인식에서 해방된다.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265쪽)


죽음으로만 이데올로기와 국가폭력이라는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는 현실이 가혹할 따름이다. 그러나 죽음은 또 하나의 해방이며 시작일 수 있다. 진영대립이 심각한 지금, 남아 있는 세대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중요한 관점을 던져준다. 한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삶을 통해 깊게 깨닫게 된다. 아버지는 조선일보를 읽으며 군인에 이어 교련선생을 했던 박 선생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서로 싸우면서도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p.47)라며 그의 인간성을 인정했다. 장례식에서 딸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제일 가까이 지켜준 그 친구와 처음으로 맞절을 하게 된다.


한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왜 나의 다정한 이웃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자일까?”라는 고민은 이 책을 읽고 사라졌다. 한 동네에 사는 정 많은 이웃이며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일 뿐, 잘못되었거나 틀린 존재가 아니다. 금기시 했던 정치적 이야기도 하나의 입장으로 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진영 갈등이 더 극에 달하게 되어 어떤 파국이 올지 모른다. 서로 피하고 반목하기보다 조금 다투더라도 대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시의적절한 책이며 진보든 보수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이념을 넘어선 인간다운 삶을 고민하며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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