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이 줄 수 있는 '의미'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를 읽고

by 책선비

‘칠드런 액트’는 1989년 제정된 영국의 아동법으로서, 법정이 18세 이전의 미성년자에 관한 사건을 판결할 때 ‘아동의 복지’를 최우선적인 기준으로 삼도록 명시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는 내용이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정사에 법원이 개입하여 어린이의 권리와 입장에서 판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이언 매큐언’은 이런 아동법의 취지와 가치판단을 내려야하는 가정 법원의 역할을 토대로 장편소설<칠드런 액트>(한겨례출판, 2015)를 출간한다. 영국 고등법원 가정부 판사 ‘피오나’와 그녀의 판결에 생명이 달린 17세 소년 ‘애덤’의 이야기다.


이언 매큐언은 대중과 비평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영국 작가이다. 사회와 역사를 폭넓게 다루며 색다른 주제를 생생한 문체로 극대화하여 흡인력 강한 작품들로 인정 받고 있다. 그는 1975년 석사 학위 졸업 논문으로 쓴 단편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서머싯 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다. 1987년 <차일드 인 타임>으로 휘트브레드 상, 1998년 <암스테르담>으로 맨부커 상, 2002년 <속죄>로 전미비평가협회상, 영국 작가협회상 등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쓴다. 13번째 장편소설 <칠드런 액트>는 2014년에 출간과 동시에 30만부 판매되었고 큰 호평을 받으며 전 세계 24개국 판권이 계약되었고 현재까지 꾸준히 읽히는 작품이다.


작품은 복잡한 상황에 빠진 인간의 심리를 해부하고 인생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피오나는 동료들의 찬탄의 대상이 될만큼 뛰어난 판별 능력을 지닌 판사로서 명예롭고 안정적인 삶을 산다. 예순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의 외도 선언 앞에 일상의 균형이 흔들린다. 또한 그녀는 신앙의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애덤과 소년을 살리기 위해 백혈병 치료 허가를 요구하는 병원 간의 소송을 맡는다. 애덤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병원에 방문한 피오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법원으로 돌아가기 직전, 자연스럽게 애덤의 바이올린 연주에 피오나가 노래를 부르게 되고 애덤은 극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소설은 아동법을 바탕에 두고 종교와 의학(과학)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생명을 포기한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옳은 일인가? 이 질문은 개인과 사회, 신념과 과학, 종교와 도덕 등 복잡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이 중첩되어 있다. 어려운 문제 앞에 피오나는 “존엄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생명”(p.169)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병원이 애덤을 치료하도록 허가한다. 인간의 자유와 권리도 생명이 유지되어야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삶을 둘러싼 제도와 환경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성과 법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피오나는 애덤의 상황을 관찰한 후 아동법에 따라 신중한 판결을 내렸지만 반대의 결과를 맞이한다. 아동법과 복지 제도는 한 사춘기 소년의 복잡한 상황과 감정을 품지 못한다. 고정적이고 폐쇄적인 세계에서 살았던 애덤은 병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그 환경으로부터는 구조되지 못한다. 지적이고 예술적인 열정을 가진 그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피오나에게 구원 요청을 한다. 그러나 감정적 동요를 누르고 그녀는 법정을 떠나면 책임도 끝난다며 거절한다. 그러나 처참한 결과 앞에 피오나는 “그 애가 나를 찾아왔는데 난 종교를 대신할 무엇도, 그 어떤 보호책도 제시하지 못했어.(...) 초자연적인 힘이 아닌 자유로운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건 ‘의미’였어.”(p.288)라며 후회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모범답안만 있을 뿐. 순수한 믿음과 신앙 공동체만이 정답으로 알았던 애덤과 만점짜리 법관으로서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피오나는 서로의 강렬한 만남을 통하여 인생의 ‘오답’에 직면한다. 순회 일정 중에 자신을 쫓아온 애덤을 돌려보내면서 피오나는 그의 볼에 입을 맞추기 위해 다가갔다가 어떨결에 서로 키스를 하게 된다. 이는 각 인물이 구축했던 세계가 얼마나 허술하며 작은 균열과 충돌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오답이라고 여겼던 인생이 눈 앞에 펼져지고 자신의 세계를 잃고 헤매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해야할까.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p.161)

고정된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 혼란과 방황을 만들더라도 한번쯤은 직면해볼 수도 있다. 애덤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갔던 피오나는 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노래를 부른다. 두 사람은 신념과 이성에 대한 모든 논리와 판단을 내려놓고 시와 음악과 마음에 집중한다. 노래 가사 중에에서 두 사람은 깊은 여운을 주고 받는다. 자연스런 인간적 감성과 교류가 흘렀던 그 때 두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하고 변화를 겪는다.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에 하나이다. 또한 인생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문장이자 작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keyword
이전 10화구원으로 이끄는 사랑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