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존재'를 꿈꾸며

밀란 쿤데라의 <불멸>을 읽고

by 책선비
“강렬하게 집중된 시선 앞에 영혼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부풀고, 부피가 커지다가, 마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발하는 기구처럼 마침내 창공으로 날아오른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먹을 들게 하고, 총을 잡게 하고, 정당한 혹은 부당한 명분을 옹호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팽창된 영혼이다. 바로 이것이 ‘역사’의 모터를 돌아가게 할 수 있었던 연료요, 이것이 없었다면 유럽은 잔디밭에 누워서 떠 하늘에 떠 있는 구름들을 권태롭게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p.343)


체코 출신의 밀란 쿤데라는 장편소설 <불멸>(민음사, 2021)에서 왜곡된 이미지에 의지하여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담아낸다. '팽창된 영혼'들이 이미지가 지배하는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오늘날영상 시대에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불멸>은 밀란 쿤데라가 1990년에 프랑스어로 발표한 소설이다. 현대의 ‘아녜스’와 ‘로라’ 자매 이야기와 역사적 인물인 ‘괴테’와 ‘베티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대조적인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두 자매는 아녜스의 남편인 ‘폴’을 두고 사랑의 경쟁의 벌이다 극적인 상황을 맞는다. 베티나는 괴테의 연인이었다는 ‘불멸’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기대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이 두 이야기는 ‘안경’과 ‘선글라스’ ‘몸짓’ 등 여러 모티브를 통해 병치된다. 또한, 작가는 화자로 목소리를 내거나 직접 소설에 등장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한다.


소설은 불멸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낸다. 로라와 베티나는 불멸을 향한 열정적인 ‘몸짓’을 취하는 인물로 나온다. 로라는 폴을 통해 불멸을 욕망하고 베티나는 괴테의 명예를 이용하여 불멸을 꿈꾼다. 즉, 로라는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의 기억에 남는” ‘작은 불멸’을, 베티나는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서도 남는”(p.82) ‘큰 불멸’을 추구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원했던 불멸을 성취한다. 로라는 언니인 아녜스가 사망하자 형부와 결혼하고, 베티나는 훗날 괴테의 편지를 조작한 것이 드러난다. 과연 이 모습이 로라와 베티나가 불멸을 통해서 얻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 즉 이미지였는지 질문하게 된다.


작가는 본질보다 이미지를 추구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저승길에서 헤밍웨이를 만난 괴테는 세상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반박하다가 이내 수긍한다. “자기 이미지에 대한 염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미숙함”이라며 이미지에 무심함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지를 조작한 것은 베티나 뿐만 아니라 괴테 역시 자서전과 여러 책을 통해 이미지를 과장했던 것이다. 이에 작가는 “멸한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인간 경험”(p.347)으로서 인간은 멸할 줄 아는 존재임을 받아들여라고 말하고 있다.


소설은 “자아의 유일성을 가꾸는 방법”(p.164)으로 아녜스 모습을 제안한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아녜스는 최소한의 모습으로 존재하길 바란다. 그녀는 “순수한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 자신의 자아에서 외적인 것과 빌려온 것을 모두 추려”낸다. 또한 괴테의 부인이었던 ‘크리스티아네’도 “영혼의 이상 팽창으로 괴로워한 적이 없”(p.343)는 인물이다. 반면에 로라와 베티는 외부적인 요인을 덧붙이는 ‘덧셈’의 방식으로 자아를 ‘팽창’시켜 존재감을 얻으려 한다. 작가는 이런 로라와 베티나를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아녜스와 크리스티아나의 모습을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밀란 쿤데라의 <불멸>은 독특한 구성과 다양한 소설적 기법을 활용하여 불멸을 향한 인간의 헛된 욕망과 한계를 그려낸 작품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들이 교차적으로 등장하여 여러 층위에서 주제를 드러낸다. 이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주인공과 줄거리를 다르게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실과 상상, 사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하여 독자가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이거나 실존에 관한 통찰력 있는 문장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keyword
이전 08화거대한 고통, 인간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