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퇴근 후 책의 세계로

쪽잠과 피곤으로 충혈된 눈이 향하는 곳

by 책선비

육퇴는 육아퇴근의 줄임말이다. 가정주부를 직장인으로 봐주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 육퇴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는 할까 의문이 들기도 하다. 한참 넷째를 키울 때 유행했던 이 말이 나와는 상관없이 들렸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려면 한참 멀었고 가더라도 적응을 잘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럼에도 온종일 육아 기간에 잠깐의 육퇴 순간이 오기는 왔다.


물리적으로나마 네 아이 모두 동시에 잠드는 때가 온다. 그러나 완전한 육퇴는 아니다. 공간은 집 그대로이다. 또 언제라도 아이들은 밤에 수시로 깨서 엄마를 찾는다. 열이 나서, 더워서, 악몽을 꿔서, 옆에 엄마가 없어서 등. 그래도 막내가 3살이 넘어가면 조금 길게 잠을 잔다. 아이가 푹 잠들었다 싶어 시계를 보면 밤 12시.


그냥 잠들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일어난다.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고 어김없이 깨고야 마는 새벽 2시까지, 나만의 시간을 포기할 수 없다. 잠을 자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몸으로 나는 책을 펼쳤다. 황금 같은 시간, 꿀같이 달콤한 순간을 만끽하는 방법은 책이었다. 왜냐면 다른 세계로 떠나고 싶었으니깐. 당시의 현실은 행복하다가도 우울하고 힘들다가도 갑자기 씩씩해지는 나의 모습이 무척 혼란스러웠다.


일기장에 하루는 기쁨과 감사, 하루는 우울과 좌절의 글이 왔다 갔다 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육아도 열심히 도와주는 남편을 보면 행복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인간은 사라지고 있었다. 무조적인 허용과 무한한 사랑의 느낌을 알게 해 준 넷째로 인해 행복하지만 넷째로 인해 내가 포기하게 되었던 일과 관계로 인해 쓰라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상받고 싶어서 책을 찾았다. 지적인 채움은 적어도 나를 미워하게는 만들지 않았다. 여러 작가나 독서가들이 쓴 독서 에세이를 읽었다. 실제로 읽지 않으면서도 제대로 읽은 듯한 맛에 취하기 딱 좋았다. <지난 10년 동안 놓쳐서는 안 될 아까운 책>, <밤은 책이다> 등.


그러다 한 권의 책을 만난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김연수 소설가도 몰랐고 그의 소설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여러 독서가들이 권해서 구입했다. 소설에 전혀 관심도 없는데 이 책을 고른 이유가 지금도 좀 의아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정적인 책이었다. 당시의 혼란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책과 글쓰기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생의 죗값을 갚던 어느 날, 마침내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나는 힘쓰는 일은 잘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뭘 짊어지고 다니는 걸 본 사람 있는가? 오직 책, 내가 그 어떤 물건보다도 사랑하는 책만을 나는 짊어지고 다닌다. 그러니 이 생고생은 피할 수 없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생고생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사랑이 없다면 피할 수 있었던 그 많은 생고생들이 이를 증명한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이 생고생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건 내가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뜻이다. 생고생(하는 이야기)은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해준다는 걸 문학이론에서는 '성격적 결함'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46쪽
이 모든 생고생이 내게 없는 것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나의 장점, 내가 사랑하는 것들 때문에 생긴다는 걸 아는 순간, 구멍에 불과했던 단순한 욕망은 아름다운 고리의 모양이 지닌 복잡한 동기가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 인생을 이끌 때, 이야기는 정교해지고 깊어진다. 47쪽

김연수 소설가의 통찰,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며 나도 혼란스러운 네 아이 독박육아 인생을 받아들였다. 모든 시간을 엄마로서 살아가는 내 존재가 바로 지금의 '나'이다. 그런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뚜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포기했던 일과 관계의 아픔은 여전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니 새로운 일과 새로운 관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생고생의 의미는 무용한 책 읽기와 글쓰기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이 또한 생고생의 영역이며 내가 누구인지, 내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여정이었다. 어느 순간에 이런 내용을 글로 쓰고 싶었다. 특히 좋은 책을 소개하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전하고 나누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2017년 7월 25일 9주년 결혼기념일에 넷째가 태어났고, 2019년 3월 9일 첫 서평을 온라인 서평수업 카페에 올렸다. 2023년 8월 지금까지 서평을 쓰고 있다.


첫 서평은 엄밀히 말해서 서평은 아니다. 얼마나 끙끙거리며 썼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다음 이야기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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