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 모습대로 있어. 그래도 괜찮아.
어릴 때 첫기억을 떠올려보면 여러 장면이 스친다. 집 앞 평상에서 막내 이모에게 시계보는 것과 한글을 배웠던 기억이 있다. 막내 동생을 혼자 업고 걸어갔던 모습도 떠오른다. 또 어떤 장면에서는 이가 좋지 않아던 엄마가 집에서 치과 치료를 받는데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함께 엄마가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내가 있다.
가장 생생하고 좋은 추억으로 기억된 장면이 하나 있다.
초1 첫 소풍 때 새벽부터 엄마가 김밥을 싸고 가방에 과자와 음료를 넣어주면서 동생들이 깨서 보면 안되니깐 잘 챙겨놓아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가방을 꼭 끌어안고 큰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두려움과 설레임이 가득했다. 당시 나는 학교가 너무 낯설어 했다. 학교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고 집에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소풍이라니, 좋아해야하는 분위기인데 마냥 그럴 수가 없었다. 너무 막막했다. 친구들과 손잡고 선생님의 인도 따라 보고 느끼고 즐기며, 점심 먹고 노는 게 소풍이지만 나는 선생님이 무섭고, 친구도 없어서 누구랑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 것도 몰랐다.
당시 소풍 사진에는 앞머리가 눈 앞까지 내려온 단발머리 한 여자아이가 무덤 옆에서 김밥을 입에 넣고 있고 얼음처럼 얼어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개구장이 처럼 온몸으로 뛰어놀고 있었다.
머리에 가려져 눈이 보이지 않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8살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스스로 지금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처음 학교 생활은 누구나 낯설고 어려울 수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오랫동안 학교에서 말을 안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몇 학년 때인지 모르지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학교에 와서 말 한마디 안하고 가는 아이가 있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오롯히 선생님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내 눈을 볼까봐 순간 긴장했다. 나를 보지는 않지만 나를 두고 한 말 같았다. 일부러 나를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나를 두고 한 말임을 확신했다. 그 순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어찌 할 줄을 몰랐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때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누가 뭐라하든 너는 너의 속도대로 잘 하고 있다고. 사람마다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그런 식으로 말한 선생님이 미성숙한 거라고.
왜 나는 학교에서 말을 못했을까?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유를 떠나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졌다면 어땠을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는 언제 그래냐듯이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했다. 학교에서 배우고 친구를 만나는 모든 생활을 좋아했다. 어떤 계기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학교에서 말 못하고 가만히 얼음처럼, 목석처럼 앉아 있는 나에게 “그냥 니 모습대로 있어.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