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정신적 뜨개질 나를 표현하는 기쁨

서평쓰기 전 100일 글쓰기, 365일 글쓰기의 기억

by 책선비


서평을 쓰기 전에 100일 글쓰기와 365일 글쓰기를 완주했었다. 온종일 네 아이 육아로 우울감이 극에 달했을 때 매일 글쓰기는 나를 살리고 살도록 이끄는 유일한 길이었다.


내 상황을 적확하게 표현한 문장을 만나면 다시 사는 느낌이 든다. 흐릿한 존재감이 뚜렷해지고 "저 여기있어요" 손을 들고 외치고 싶다. 어떤 글에서 한참 온종일 육아에 허덕였던 나를 만난다. 반갑고 찡하고 해소되는 감정들 앞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출산으로부터 시작된 여정에서 단 한 차례도 쉰 적이 없는 여성들을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고백했다. 극심한 변화의 한복판에서 해진 마음을 잇고 깁듯이 글을 썼다. 동생은 '나지만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자주 토로했었다. 갓난아이를 먹이기 위해 여성이 신체는 전에 없던 호르몬과 각성을 동원한다. 그것은 생경한 고통이기에 앞서 지독한 고독일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인간의 몸이 겪어내는 감각은, 그것이 여성 인류가 대대로 경험했으며 수많은 출산 육아 책에 모조리 쓰여 있다 해도, 결코 타인과 온전히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체적 고독에 사회적 고독이 더해진다. 삶에서 가장 귀한 존재를 얻은 대신, 그들은 자신의 어떤 일부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낀다. 이 과정에서 '정신의 바느질'이 필요하지 않은 여성은 드물 것이다.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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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생경한 고통과 사회적 고독 속에서 내 안에 있는 어떤 언어라도 붙들기 위해 매일 글을 썼다.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함께 쓰는 사람이 있으면 충분한 일이었다. 100일 글쓰기와 365일 글쓰기 모임에서는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한 단어, 점 하나라도 쓰면 하루 글쓰기로 인정해줬다. 무한 배려와 디테일한 격려는 몸을 일으키고 의자에 앉아 뭐라도 끄적이게 만들었다.


100일 글쓰기를 채우고 수료증을 받았던 날은 막내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유아기 4명의 아이들과 독박육아 중에 나는 글쓰기를 통해 내 정신줄을 잡고 있었다. "정신적 뜨개질"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육아에 허덕이는 나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을 트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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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정말 오묘하다. 적어놓고 보면, 살만한 인생처럼 보였다. 힘들다 괴롭다 어렵다, 하소연 넋두리 주저리 쏟아놓으면, 살짝 민망해질 정도로 꽤 괜찮게 뭐 어떻게든 살아가는 내가 기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동시에 내 글을 읽다보면 풍덩 빠져있던 내 감정과 느낌과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어느 정도 거리감이 생겼다. 글쓰기 전문가들이 항상 하는 강조하는 부분이다. 이 거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게 하고 더 나은 판단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한 글쓰기가 나를 조금씩 성장시키고 있다. 정신적 뜨개질로서 글쓰기의 효용은 정말 크다. 관계 문제를 풀거나 일을 선택할 때 끊임없이 글쓰기를 하면서 나름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다. 사람에 대한 나의 과한 기대감도 알아차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 중에서도 더 구체적인 영역을 발견하여 도전하는 중이다.


오늘도 정신적 뜨개질은 계속된다. 주말에 아이들과 지내면서 틈틈히 키보드를 꺼내서 끄적인다. 터져나오는 잔소리를 가만히 응시해본다. 불필요한 말이 섞여 있다. 글 쓰느라 잠깐 집중할 때 투닥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소리가 안나간다. 글쓰기를 멈추어야할 때이다. 이런 메타인지도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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