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한 나를 대면하는 장소
2009년 결혼 후 신혼집 제일 작은 방에는 항상 책상과 책장이 놓여 있었다. 각자 본가에서 들고 온 남편과 나의 책들이 빼곡했다. 대부분 20대때 치열하게 읽고 공부했던 신앙서적과 전공서적들이었다. 이사를 다니면서 버려야할지 말지 늘 고민하다 다시 챙겼던 책들은 10년 뒤에 선택받지 못하고 빛바랜 채 놓여 있었다. 책상과 책장도 세월의 흔적이 짙었다.
문득 오랜 시간 동안 내버려진 책상과 책들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졌다. 모두 버리고 예쁘고 넓은 하얀 책상으로 바꾸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들었다. 아이들 장난감 사느라 중고품을 검색하다 누군가 무료나눔을 내놓은 하얀 책상 사진이 생각났다. 당장 연락하여 책상을 가지러 갔다. 원목이라 무거웠고 유리판까지 가져오느라 남편과 나는 땀을 꽤 흘려야했다. 땀을 흘리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땐 한 겨울이었지만 나는 매일 땀범벅 인생이었다.
6개월된 넷째를 업고 고만고만한 세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마치 매일 등산하는 것과 같았다. 더이상 등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심리상담사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다 숭례문학당 독서공동체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큰 책상을 사고 새로운 책을 올려놓게 되었다. 등산은 여전했지만 상담사는 필요없어졌다. 내 책상과 책으로 충분했다.
교회 네이버 밴드에 안쓰는 책장을 주겠다는 한 자매의 글을 보자마자 나는 바로 손을 들었다. 사진에 담긴 책장은 베이직과 옅은 갈색 톤이 잘 교차되어 세련되 보였다. 폭이 넓은 나의 하얀 책상과 딱 어려울렸다. 책장이 없었던 터라 반가웠고 주말에 그 책장을 받을 생각을 하니 무척 설레었다.
교회에서 자매에게 그 책장을 받을 때 옆에 한 50대 형제분이 물으셨다. “아이들 책상에 두려고?” “아니요” “그러면 남편 책상?” “아니오. 제 책상에요.” “책상? 뭐, 밥먹는 밥상?” "........" 나는 그 분의 눈을 보면서, “제 책상이라고요. 아이도 남편도 아닌.” 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그와 나 둘다 당황했던 것 같다. 나에게 너무 당연했던 책상을 그는 너무 당연하게 밥상으로 이해했다는 사실이 그랬다. 나는 그가 4남매 엄마에게는 밥상만 필요하지 책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였으리라 본다. 그저 엄마라는 역할과 책상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지 않았을까. 4남매 엄마도 책상과 책장을 소유한다는 것을 겪었으니 그 일 이후로 그는 누구든 책상을 언급하면 밥상이 아닌 책상으로 떠올렸을 것이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이프앤페이지, 2020)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책은 일생에 걸쳐 지나온 ‘집’과 ‘방’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풀어낸 에세이이다. 저자는 어렸을 때, 엄마가 대식구 가사 노동에 지쳐 다락방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녀는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느꼈다”(p.27)고 한다. 또한 방이 넉넉했던 빌라에 살았을 때 모든 가족은 각자의 방을 가졌고 아빠의 취미생활을 위한 방까지 마련했지만 엄마만 방이 없었는데, 이를 지적한 저자에게 엄마는 “괜찮아. 집 전체가 다 내 방이지.”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이에 하재영은 “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서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 되었다. 엄마는 장소 그 자체였다.”(p.141)고 서술한다.
장소 자체였던 엄마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엄마도 ‘있어야 할 자리’에 ‘할 일을 하고 난’ 뒤 역할에서 벗어나 고유한 자신을 대면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나는 심리상담사와 대화를 하기 전에 나에게 스스로 말을 붙어보고 싶었다. 부엌의 식탁 대신, 밥상이 아닌 책상을 선택했고 나만의 공간으로 꾸몄다. 금방 책장에 새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무슨 책을 읽을지 어떤 책을 선택할지 몰라서 독서에세이 책을 읽었다. 독서공동체에서 제안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다양한 책을 소개 받았다. 삼국지 읽기, 한나 아렌트 전작 읽기, 토지 전권 읽기 등 중도 하차 한 적도 많았지만 여행 떠나듯 읽는 순간을 즐겼다.
늦은 저녁에 네 아이들을 재우고 밤 10시부터 - 새벽 2시까지 꿀같은 시간을 보냈다. 거실 저쪽에서 자다 깬 넷째가 조르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얼른 책상에 일어나 아이를 안고 다시 안방으로 가야했던 날들도 많았지만 점점 그 횟수가 점점 줄여갈 때쯤 막내는 3살이 되었고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했다. 온종일 육아에서 벗어나고 낮시간에도 책상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 이어서)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p.135)
책상을 고르는 데에 고심했던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가구여서이기도 하다. 식탁이나 책장, 소파나 침대와 달리 나는 책상을 남편과, 또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면,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의 한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상이 차지하는 면적만큼 내밀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