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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런 10키로 성공

‘함께‘ 달린다는 의미

by 책선비

3km 혼자 달리기가 익숙해질 무렵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었다. 도서관 옆 공원이 갑자기 작게 느껴졌다. 나는 그 길을 벗어나 근처 운동장 트랙으로 향했다. 하지만 5km를 달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8분대 속도로 거리를 채웠지만 이내 한계가 왔다. 한 번 호흡이 흐트러지면 걷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왔다. 손목에 찬 시계를 자꾸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몇 km나 남았는지를 세는 일이 반복됐다.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한 적이 있는 지인이 생각났다. 그에게 회장님의 연락처를 받아 단톡방에 들어갔다. 10km 이상 달리는 사람들의 사진이 자주 올라왔고, 하프와 풀코스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도 보였다. 다양한 인증샷과 다정한 격려들, 진심어린 칭찬과 응원의 말들. 익숙하지 않았지만 마음 놓이는 공간이었다. 나도 매일 아침에 달리기를 하고 인증사진을 올리며 함께 했다.


며칠 뒤, 운동장에서 달리던 중 경쾌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책봄님이세요?" 동호회 회장님이었다. 수학 학원을 운영한다는 또래의 원장님.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나온 것 같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운동장 트랙을 함께 달렸다. 그녀는 조금 앞서 달리면서 나를 돌아보며 계속 말을 걸었다. 내 몸이 그 리듬에 천천히 동화되면서 처음으로 '같이 달린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날 생애 최초로 5km를 7분대에 달렸다. 끝나고 나서야 기록을 확인했을 때 스스로도 놀랐다. 운동장에서 집까지 걸어가면서 그녀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달리는 모습이 저한테도 자극이 돼요."라고 말했다. 거리를 보나 기록을 보나 나는 그녀보다 한참 뒤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말은 단순한 격려 이상의 진심으로 느껴졌다.


얼마 뒤 단톡방에 '일출런' 공지가 올라왔다. 토요일 새벽 4시 반, 임랑에서 출발해 정관까지 9km를 달리고, 마지막 1km는 해안을 따라 일출을 바라보며 달리는 코스였다. "느린 사람 기준으로 달립니다." 그 문장 덕분에 용기를 냈다. 낯선 동네, 처음 가보는 길, 해가 뜨기 전의 바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5키로도 겨우 일주일 정도 뛰었는데 한번도 해보지 않은 10키로 달리기라니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도중에 못 달린다고 주저앉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기대가 조금 더 앞섰다. 왠지 함께라면 지금보다는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6명이 모였다. 청년 남성 둘, 비슷한 또래의 여성 넷. 회장님을 제외하면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말없이 몸을 풀고 곧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직 어둑어둑한 길 위에서 우리는 하나의 방향으로 달렸다. 내가 뒤처질 때면 누군가 페이스메이커처럼 옆에서 함께 했다. 허리를 세우고 보폭을 줄이라는 다정한 조언이 이어졌다. 힘이 빠지고 속도가 느려질 때마다 "달릴 수 있어요"라고 외쳤고, 손을 크게 휘저으며 응원해 주었다.


길 옆 개울가에도 오리 가족이 줄지어 달린다. 물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움직임이 어쩐지 지금 우리와 닮아 있다. 앞선 무리도 서두르지 않고 뒤따라가는 오리도 더 느려지지 않는다. 일정한 속도로 쭉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도 옆 사람의 숨소리를 의식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앞선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눈빛으로 괜찮냐고 묻는다. 나도 이들의 몸짓에 반응하듯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9km를 지나자 앞서 달리던 방장님이 외친다. "곧 바다가 나와요, 조금만 힘내요!" 그 순간 수평선 위로 해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짙은 남색 바다 가장자리가 연한 주황으로 물들고 붉은 해가 쑤욱 떠오른다. 햇살이 바다를 금빛으로 바꾸고 있다. 마지막 1km는 그 빛을 따라 홀리듯 달린다. 숨은 거칠고 다리는 무겁지만 마음은 세상의 모든 빛을 품은 듯 벅차오른다.


처음엔 그저 가볍게 시작한 달리기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삶의 결이 달라졌다. 혼자였던 나의 새벽에 사람들이 들어왔고 함께 뛰는 발걸음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사람을 피하고 혼자를 선호하던 내가 지금은 그들과 함께 땀과 호흡을 나누고 있다. 함께 달리는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며 나는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해장국집에 들렀다. 김이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사이에 두고 그제야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어색함도 잠시, 이름과 나이 그리고 사는 곳도 다 달랐지만 10km를 함께 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다가오는 마라톤 대회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나중에 단톡을 확인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헤어진 뒤 곧바로 다른 운동장에서 5분대 속도로 10km를 더 달렸다. 나와 함께한 10km는 그들에겐 몸을 푸는 정도였던 셈이다. 워밍업처럼 참여했다고 하기에는 그들의 배려가 얼마나 섬세했는지 뒤늦게 마음에 와닿는다. 속도를 맞춘다는 건은 어쩌면 속도를 늦추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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