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화가 난 거야
아이들과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갑작스럽게 얻은 시간이라 반갑기도 하고 부담되기도 하다.
원래 피아노와 태권도를 다녔는데 둘째의 축구 진학 결정으로 모든 학원을 그만두었다. 재정적인 압박이 커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오후 5시까지 온전히 내 시간을 가졌지만 이제는 1시까지 있다가 집으로 와서 아이들을 맞이 하였다. 급하게 수업 준비를 해야 하거나 교육원 과제나 시험공부를 할 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집에 있게 되었다.
늦게 집에 들어 가는 날이면 아이들은 아이패드에 쩔은 채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반기듯 아닌 듯한 태도로 현관 앞으로 나온다. 나는 이 모습에 불같이 화가 난다.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 몇번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있다. 금새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더 몰아세웠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이 방치되는 것 같아 속상해서? 그러면 화 낼 것이 아니라 속상함을 표현하면 된다. 내가 화난 이유는 나 때문이다.
아이들이 충분히 케어를 받고 필요한 공부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지원받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꼭 내 탓 같아서. 나의 무능력함에 화가 났던 것이다.
나는 무능력한 사람일까?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들 등교시키고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
간다. 해야할 수업 준비와 공부를 하다보면 오전 시간이 금새 다 가버린다. 막내가 올 시간에 맞춰 1시에 집에 가서 간식을 챙겨주고 수학 문제집을 같이 풀도록 한다. 셋째가 오면 잠시 같이 놀다가 책 읽고 영어 강의를 듣도록 한다. 이 과정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쉬다가 공부하기 위해 스스로 책상에 앉기까지, 30분-1시간 실랑이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재촉하거나 잔소리를 하면 금새 하기 싫어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가진다. 잠시라도 책상에 앉도록 달래는 일도 쉽지 않다.
이제 저녁 준비를 위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 놓을 시간이다. 설겆이까지 끝내놓고 옷을 갈아 입은 뒤 도서관 수업을 가거나 교육원을 향해 나선다. 아이들만 남겨놓고 나가려니 머리 속이 또 복잡해지지만 알아서 잘 챙겨서 먹겠지 라고 믿고 뒤돌아선다.
그래, 나는 무능력가 아니다. 그러니 내 자신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화 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