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상한 밤이었다. 또 모든 것이 불분명한 밤이었다. 서로의 본심을 묻지도...정리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었다. 쏟아진 첫눈 역시 어딘가 모르게 서툰 느낌이었고, 올 때의 느낌에 비해 돌아가는 길은 터무니없이 짧은 것이었다. 눈길을 걸으며, 그러나 스스로는 많은 것을 고백했다 믿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전달한 기분이었다. 설령 그것이 오해라 할지라로, 그 오해를 믿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참 이상해, 하고 나는 말했다. 30쪽
별일 없는 봄밤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강릉을 떠나온 날 아침에 내가 한 말들이며... 그 속의 진실과... 거짓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그랬다. 실은 단 한 번도...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었다. 도대체 산다는 건 뭘까? 고양이의 똥을 치우듯 내가 뱉은 거짓말들을 머릿속에 추스르며... 인간은 결코 진실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해의 봄은 그렇게 끝이 났다는 생각이다. 외로웠다고도, 외롭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봄이었지만...그대로 조금은 아주 조금은 외로웠던 봄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68쪽
진실한 표정을 지으며 뻔뻔하게 과장과 거짓말을 해놓고 그날 밤 자기 전에 후회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일기장에 이 사건을 소상히 밝히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진실해져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치곤 했다. 늘 그렇듯한 반성과 각오의 문장으로 모든 민망함을 덮어두었다.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 되면서 인간은 대책없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이렇게나마 반복적으로 그런 일기를 쓰는 게 나를 저차원으로 더 끌어내리지 않고 평균 정도의 수준은 유지하는 게 아닌가 싶어 여전히 반복하고 있기는 하다.
오해와 불투명함 속에서 사랑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또 그것을 바로 잡으려고 나처럼 일기를 쓰거나 소설의 화자처럼 소설을 쓰는 것도. 바로 잡히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더 곡해의 길로 갈지도 모른다. 오해와 거짓이 삶의 생존 조건이자 필수적인 요소라는 진실이 묘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