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적들도 복의 한 부분

<차라투르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 005

by 책선비

-베푸는 덕에 대하여


최고의 덕은 흔하지 않고, 씀씀이를 따로 갖고 있지 않으며, 빛을 내는가 하면 광채 속에서 은은하다. 베푸는 덕이야 말로 최고의 덕이다. p.124


너희가 찬양과 비난에 초연해 있고, 너희의 의지가 사랑하는 자의 의지로서 모든 사물에 명령을 내리고자 할 때, 거기에 너희의 덕의 근원이 있으렷다. p.126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이것이 언젠가 우리가 위대한 정오를 맞이하여 갖게 될 최후의 의지가 되기를!


-거울을 들고 있는 아이


저들 틈에는 나의 적들도 있으렸다! 내가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나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그러니 나의 적들 또한 내가 누리고 있는 복의 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p.137



나와 안 맞는 사람, 내가 보기에 이기적인 사람은 항상 거리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나쁜 사람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분명 나는 제일 멀리 그로부터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정말 상종을 해서는 안되는 인간들과는 애초부터 조금이라도 얽혀서는 안되는 일이다.


적도 내가 누리는 복 중에 한 부분이라고? 이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며 내가 선하다고 여기며 품고 있는 것들을 구별해주는 하나의 기준이라는 것. 그것만으로 그 나쁨과 적은 내 인생의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완전히 없앨 수도 없고, 부정한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적. 한때 선과 사랑이었던 남편이 나의 적처럼 느껴진 적도 있는데 여기서 동지와 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선과 악도 구분도 흐릿해진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것처럼 오늘의 적도 내일의 동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세상은 진공상태가 아니다. 선과 악이 혼잡하게 섞여 있고 친구와 적이 사방에 흩어있다. 그럼에도 나는 명확한 기준으로 분명하게 구분하고 싶고 적에 관련하여 일말의 접근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난 날을 돌아보면, 이상한 사람과 얽힌 적은 없어서 어려움은 없었지만 인간과 인생을 납짝하게 이해하고 단순하게 바라보았던 것 같다. 스스로 편견이 많고 속이 좁다고 느꼈다. 아마도 좋은 사람들도 많이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크게 후회되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경험의 폭이 좁다보니 생각의 깊이도 부족하고 진짜를 알아봐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제는 나빠 보이는 것,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것들을 너무 밀어내지 않기로 해본다. 실제로 행동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 마음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많은 것을 품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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