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006
-행복이 넘치는 섬들에서
최상의 비유라고 한다면 불멸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생성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런 비유는 일체의 덧없는 것들에 대한 찬미가 되어야 하며 정당화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창조, 그것은 고뇌부터의 위대한 구제이며 삶을 가볍게 해주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창조하는 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고뇌가 있어야 하며 많은 변신이 있어야 한다. p.142
-연민의 정이 깊은 자들에 대하여
고결한 사람은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는 일이 없도록 마음을 쓴다. 그는 그 대신에 고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기도록 마음을 쓴다. p.145
아무렴 나는 베푸는 자다. 나는 벗들로서 벗들에게 즐겨 베푼다. 낯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내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를 직접 따도 좋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그만큼 덜 부끄러울 것이다. p.147
그리고 최근에 나 그가 이런 말 하는 것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죽고 만 것이다.” p.149
모든 위대한 사랑은 저들 모두의 연민의 정을 넘어서 있다. 위대한 사랑은 사랑을 할 상대까지 창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 말도 마음속에 새겨두어라. p.149
여기 ‘신'을 내가 믿는 기독교 신을 대입해서 읽어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기독교는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 사랑을 연민으로 이해하고 하고 인간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측면도 있다. 그로 인한 폐해들도 많았다. 기독교인들, 기독교를 가르친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기독교의 본질은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내가 끼워맞춰서 설명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연민이 다 좋은 줄 알았는데 마음 깊숙하게 내가 연민을 준다 라는 오만함, 너는 내 연민의 헤택을 누리는 약한 사람 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고 그저 사랑의 통로일 뿐이라는 고백을 무색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고 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니체는 ‘몰락을 소망’하라고 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