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심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는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 잘 모르겠다. 고등학교 이후부터 교회 생활도 꾸준하게 했고 선교단체 활동도 열심히 했다. 신앙이 자란다고 생각했다. 공동체도 절대적으로 신봉했고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삶을 추종했다. 정의와 사랑 모두 내가 추구해야할 핵심 가치라고 여겼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제는.
모두 내 신앙이 아니라 나는 누군가의 던져놓은 그럴 듯한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이게 내 신앙인 줄 착각하고 살았다. 대단한 신앙의 선배인 것처럼 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믿는가.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모임에서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느냐고. 나는 마음 속으로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믿어요. 믿을 수밖에 없어요.' 강렬하게 피어오른 말이었다. 나의 의지를 넘어.
어떻게 믿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최근에 내가 겪은 몇 가지 기도 응답을 말할 수 있다. 그럴 듯한 설명이나 수식어는 없다. 예전에는 여기에 집착했으나 이제는 알맹이와 본질에 더 가닿기만 바랄 뿐이다. 내가 경험하고 몸소 체험한 것이 정말 내 것이 아니겠는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니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운동에 쓸 비용이 없는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수영수업에 당첨된 것. 나와 진선이. 진율이는 지난 6개월동안 했기에 이번에는 떨어져도 괜찮았다. 또한 지금 사는 집도 전세로 올 때 구하기 어려운 아파트 전세였고 나의 기도응답이라고 믿고 있다. 당시 절실한 심정으로 집을 찾고 있었고 다른 무엇도 의지할 게 없는 상태였다. 일사천리로 이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다.
지금 재정적으로 힘들고 쪼들리는 게 사실이지만 이 가운데 낙심하는 마음보다 어떻게 잘 극복해볼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 마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교회나 목장 모임에 대해 생애 최초, '기대없음'과 '무심함'이 가득하지만 도망가기 보다 직시하려고 한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이 과정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고 이끄실지에만 집중한다.
내가 그동안 절대시 여겼던 공동체 모임에서 나는 존재감을 지우고 있다. 20년 내내 그렇게 존재감, 소속감을 누리려고 발버둥쳤는데. 우스운 일이다. 아니 원래 존재감이 없었다. 어쩌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뭐라도 보태면서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나곤 했던 지난 날과 너무 다르다. 내가 하려는 말이 맥락에 맞지도 않고 딱히 덧붙일 만한, 의미있는 말도 아니다.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도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뜬구름 잡는 말만 늘어놓는다. 자기 고민을 말하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볼 때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진짜 할 말이 없다. 점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믿는데 공동체 모임은 가고 싶지 않는 상태가 되겠지.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붙들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다녔을 것이다. 답을 찾으려고, 누군가 해결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전에 껍데기부터 벗겨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