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AI와 함께 글을 쓸 수 있을까
"하지만 힘을 덜 들인 '완전하게 내 것이 아닌 글'을 써내는 것. 글이 나아져도 내가 쓴 것이 아니라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AI가 쓴 엉성한 초안을 다듬는 나는 작가일까 아니면 에디터일까? 글쓰기의 고통과 희열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인데 그 두 경험이 점점 희석되거나 무용한 '꼰대적 가치'로 치부되면 그 뒤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고통과 희열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더더욱 그것을 갈구할 일도 없다. 예술·창작 분야와 AI의 문제는 근본적인 가치와 의미의 문제를 시험대에 올리게 되어 괴로운 것이다."p.118
글쓰기 모임에 글을 제출하기 전에 제미나이에 넣어서 논리적으로 이상한 부분을 알려달라고 한다. 어색한 부분을 말해주면 다시 수정하기도 하고 알아서 고쳐준 표현도 바꾸기도 했다. 다시 들여다보면 내 글 같지 않은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붙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보니 대충 훑어보고 글을 보냈다. 1월 한 달 동안 2개의 모임에서 총 8개의 글을 썼는데 거의 모두 이런 작업을 거쳤다.
그 중에 몇 개의 글을 퇴고하려고 보니 나의 원래 글과 제미나이가 손 댄 글이 뒤죽박죽이 되어 내 글인데 내 글이 아닌 묘한 느낌. 그냥 다시 고쳐달라고 할지 아니면 내가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일단 클로바 녹음기를 켜고 낭독했다.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들으며 한 문단씩 내가 조금씩 고쳤다. 이제야 내 글처럼 느껴졌다. 글의 완성도나 만족도는 둘째치더라도 내 글이 내 것처럼 이 감각이 좋았고 필요했다.
글쓰기는 "영혼의 작용"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나의 본질과 진심을 향해 스스로 한 글자씩 완결해가는 과정은 오롯이 나의 몫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통해 글을 더 쉽게 편하게 쓸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었다. 고통과 희열이 없는 글쓰기는 이미 그 의미를 잃은 것이며 내 것, 내가 만든 세계, 나만이 이루어놓은 촘촘한 그 무엇은 사라진 상태. 한달에 8편의 글을 썼어도 왠지 손에 쥔 것은 없는 듯 허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