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에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 편했다. 아직도 형기를 마치려면 겨울을 두 번, 여름을 두 번, 그러니까 이 년은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벽걸이 문제가 그를 여간 초조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p.58
슈호프는 고개를 들어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탄성을 올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위로 태양이 벌써 중천에 와 있다. 일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이없이 빨리 지나가고는 한다.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닌 슈호프지만, 형기는 왜 그리 더디게 지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다. p.87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아니, 그 따위 법령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소비에트 정부지!” 중령은 모래를 실으러 갔고, 슈호프 역시 더 이상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하늘의 법칙마저도 그들의 법령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한다. p.88-89
“그러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예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말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123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책상을 탁탁 쳤다. “천만의 말씀이오. 그 어떻게라는 것이 우리에게 선한 감정을 고양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다 무슨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p.112
각 반마다 간첩이라고 소문이 난 사람은 대여섯 명씩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당국에 의해 날조된 가짜들이다. 간첩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알고 보면 단순한 전쟁 포로에 지나지 않는다. 슈호프만 해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p.154
저녁이 되어, 이때쯤 여기서 인원 점검을 받을 때, 그다음 수용소 문을 통과하여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 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여태까지 살아온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p.173
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켠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p.193
오, 하느님. 오늘도 영창에 가지 않게 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라면 그런대로 어떻게 잠들 수 있습니다. p.220
그들도 가엾은 인간들이다. 다만,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렸다는 죄목으로 아무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모두 하나같이 이십오 년 선고를 내린 것이다. p.222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 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젠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다음에는 향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224-225
스탈린 공포정치는 기도했다는 이유로 25년 선고를 내리고, 평범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어 수용소로 보내버렸다. 정오를 12시에서 1시로 바꾸어 버려도 아무 소리를 못했던 시절이었다.
전쟁 포로로 생고생을 했는데 도리어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갇힌 슈호프. 하루 종일 추위에 떨며 노동에 시달리다가 마주하게 되는 한 그릇의 양배춧국. 어떤 자유보다 한 끼의 식사가 더 소중하다. 수용소에서 생활은 고달프고 처참하지만, 노동이 있고 식사가 있고 동료가 있기에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간다.
영창에 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식사 한 그릇에 기뻐하고 자유보다 지금 수준의 고통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그저 오늘만 같기를, 오늘보다 더 나아지길 기대했다간 더 시궁창에 빠질 수도 있기에 그런 바램조차도 사치일 뿐이다.
평등의 이름으로 성취된 혁명이 떠 끔찍한 전체주의로 변질될 줄 누가 알았을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고 희생당했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야했던 시절이다. 지금도 이런 시절이 쳐들어 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