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천년의 상상, 2020)
아이 키우며 집안일하는 가정 주부는 집에 논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편이 벌어준 돈으로 편하게 산다는 말도 들을 때가 있다. 일하기 싫고 집에서 놀고 싶어 가정 주부를 한다고도 한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 논다는 말을 들으면 뭔가 너무 억울한데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남들이 하는 소리에 처음에는 욱 했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입으로 ‘그래, 집에 놀면서 이 정도는 해야지.’라고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내가 집에서 논다는 말은 한마디로 거짓말이다. 왜 거짓말인지도 이 책에서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집에서 논다’는 말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려준다. 저자는 경제학과 사회학, 에세이 등 15권의 책을 통해 ‘엄마들은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에 대답을 찾아냈다. 한 마디로 돈이 가장 핵심이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은 가사노동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가와 노동자만 상정한 경제학 때문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노동을 얻고 임금을 준다. 노동자는 무급 가사노동자로 인해 케어 받고 다음날 출근한다. 자본가는 오로지 노동자에게만 최소한의 월급만 주고 노동 제공이 가능하도록 만든 가사 노동자에게는 아무런 지급을 하지 않고 이익을 챙긴다. 임금 노동자 가정은 자본가가 준 월급으로 자본가가 만든 물품을 소비함으로써 또 자본가에게 이익을 가져다준다. 오로지 자본가만 이윤이 최대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는 성별을 확연히 구분시키고 가사노동의 가치를 하락시키며 여자를 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소비하는 주체로만 남아주길 바란다.
남성 대 여성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모두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착취당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 어머니 세대와 젊은 세대 등 자본주의 제도 가장자리에 있는 약자들끼리 서로 오해하고 혐오하도록 만드는 큰 그림이 무엇인지 보게 된다.
“우리가 경제학으로 부르는 학문은 돈으로 환산되는 요인만 정식 구성 요소로 인정한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가족 구성원 열두 명의 아침을 지어 먹이는 저개발 국가 십 대 소녀의 노동은 국민총생산의 일부로 매김 되지 않는다. 소녀는 온종일 이해 가족의 의식주를 책임지지만, 돈으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소녀의 노동은 공식적인 ‘일’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식구들이 입고 나갈 옷을 세탁하고, 집 안 곳곳을 청소하지만, 그들의 노동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부가 자기 아이를 키우면 ‘집에서 노는’ 여성이 되고 옆집 아이를 키워주고 돈을 받으면 ‘일하는’ 여성이 되어 국민총생산을 높이는 공신이 된다.” 96쪽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모습을 떠받치고 있는 3대 요소로 여성, 자연, 식민지를 꼽는다. 자본이 상품을 팔아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천연자원이 필요한데, 이 두 가지 요인을 만들어내는 하위 요인이 여성과 자연, 식민지라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 ‘재생산’해주고, 자연은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주며, 최근에는 저개발 국가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 식민지는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동시에 제공해준다.(중략) 그러나 저자는 성별 분업이 전근대 문화의 잔여물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말한다. 남성이 가족 임금을 벌어오는 노동자 역할을 맡고 여성은 그런 남성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자본이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의 이윤 창출을 이루어낼 수 있다.” 137쪽
10년 동안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조목조목 서술되어 있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책 읽으며 공부했던 저자 덕분에 그 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감사했다. 답은 알았지만 현실은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 나의 자리에서 자본주의의 모순과 ‘가정 주부는 무보수 노동자’라고 외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작고 공허한 소리처럼 들릴 것 같다. 그래도 저자가 읽었던 책을 읽고 작은 목소리라도 보탠다면 조금 큰 외침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