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하진 Oct 11. 2024

이십엔, 놓고 꺼져

다자이 오사무 수필선집

<이십 엔, 놓고 꺼져>, 다자이 오사무, 김동근 옮김, 소와 다리, 2018

52p.

병법兵法

문장 중에, 이 부분은 잘라 버려야 좋을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두는 게 좋을지, 어찌할 바를 모를 경우에는, 반드시 그 부분을 잘라 버려야 한다. 하물며, 그 부분에 무언가 더 써 넣는 일 따위, 당치도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118p.

솔직 노트

 그러나 예술은, 약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면, 조금 의문도 생깁니다. 효능서가 첨부된 소다수를 생각해 봅시다. 위에 좋은, 교향악을 생각해 봅시다. 벚꽃 구경 가는 게, 축농증 고치러 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예술에, 의미나 이익이 적힌 효능서를, 원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가 살아있음에 자신을 가질 수 없는 병약자다. 억세게 살아가는 노동자, 군인은, 지금이야말로 예술을, 아름다움을, 내키는 대로 순수하게, 즐기잖습니까?


177-180p.

울적함이 부른 화

지드는, 그 시구에 이어, 자기 의견을 덧붙이고 있다. 즉, 『예술은 언제나 어떤 구속의 결과입니다. 예술이 자유로우면, 그만큼 높이 올라가리라는 믿음은, 연의 상승을 방해하는 것이 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칸트의 비둘기는, 자기 날개를 속박하는 공기가 없다면, 훨씬 수월하게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것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날개의 무게를 받쳐 줄 공기의 저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술이 상승하기 위해서는, 역시 어떤 저항의 도움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왠지, 어린애 속임수 같은 논법으로, 약간 결론이 성급하고, 억지스러운 감이 있다.

 하지만, 좀 더 참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지드의 예술평론은, 훌륭하군. 역시 세계 유수로구나,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은, 조금 서투른데. 의욕은 넘치되, 현을 울리지는 않는다, 이 말이다. 그는 계속 말한다.

『위대한 예술가란, 속박에 고무되고, 장애물을 디딤돌 삼는 사람입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미켈란젤로가 모세의 불편한 자세를 생각해 낸 것은, 대리석이 부족했던 덕분이라고 합니다. 아이스킬로스는, 무대 위에서 동시에 쓸 수 있는 목소리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득불, 코카서스에 사슬로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의 침묵을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리스는 리라에 현을 한 줄 추가한 자를 추방했습니다. 예술은 구속에서 태어나, 투쟁에 살고, 자유에 죽습니다.

 꽤나 자신있다는 듯, 단순하게 단언하고 있다. 믿지 않을 수 없다.

...

이것저것 문학의 적을 상정해 보지만, 생각해 보면, 전부 그것은, 예술을 낳고, 성장시키고, 승화시키는 고마운 모체였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어떤 불평도 할 수 없게 됐다. 나는 변변찮은 불량 작가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의 길을 걷고 싶다. 늘 위대한 예술가의 마음가짐을, 비슷한 것이라도 좋으니, 지니고 싶다. 위대한 예술가란, 속박에 고무되고, 장애물을 디딤돌 삼는 사람입니다, 라고 지드 할아버지께서, 상냥하게 타이르자, 너도나도 모두 함께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네, 하며 대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막상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자기를 후려치고, 옭아매는 사람들한테, 일일이,『이거,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 예술도 고무되었습니다.』라며 절을 하고 다녀야 할 판이다.

...

 불평은 크게 하는 게 좋다. 적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지드도 분명히 말했다. 「투쟁에 살고」라고 틀림없이, 분명히 말했다. 적은? 아아, 그건 라디오가 아니야! 원고료가 아니야! 비평가가 아니야! 현명한 노인이 말하기를,『마음속 적이, 가장 무서운 법이라.』내 소설이, 아직 서툴고 발전이 없는 것은, 내 심중에, 역시나 탁함이 있기 때문이다.


195p.

의무

 순문학 잡지에, 짧은 글을 쓰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나는 허세가 심한 남자라, (쉰 살이 되면, 이 허세라는 악취가 사라질까? 어떻게든 해서, 무심하게 쓸 수 있는 경지까지 가고 싶다. 그것이, 단 하나의 바람이다.) 기껏해야 다섯장 여섯 장짜리 수필에도, 내가 생각하는 전부를 욱여놓고 싶다는 허세를 부린다. 그건, 불가능한 일 같다. 나는 늘 실패한다.


199-201p.

작가상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의 구별을, 필자는, 잘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덕적 능력」이라고나 할까, 그걸 아직까지 터득하지 못한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있다. 진정, 말하고 싶다.

...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쓸 수가 없다.

 목표물로 삼은 상대에게만, 실수 없이 명중하고, 다른 착한 사람들에게는, 먼지 하나 묻히고 싶지 않은 것이다.

...

건너편 강기슭에 돌을 던지려고, 크게 모션을 하니, 바로 옆에 서 있는 여자가 팔꿈치에 맞아, 여자는, 아야야, 하고 비명을 지른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변명해도, 여자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 팔은, 남들보다 길지도 모른다.


225p.

자기 작품에 대해 말하다

나는, 내 작품과 함께 살아있다.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은, 작품 속에서한다.달리 하고픈 말은 없다. 그래서, 그 작품이 거부당하면, 그걸로 끝이다.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다.


280p.

내가 좋아하는 말

거참, 모두들, 아름다운 말을 너무 많이 쓰십니다. 미사여구를 남용하는 감이 있습니다. 

모리森鴎外 오가이가 멋진 말을 했습니다.

『술잔을 기울이며 효모를 홀짝거리지는 말 것.

고로, 나는 좋아하는 말이 없다.


281p.

향수鄕愁

검은 안경을 쓴 스파이는, 스파이로써 쓸모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위 「시인다운」허영의 히스테리즘은, 문학의 불결한 이虱라는 생각까지 들었다.「시인답다」는 말조차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쓰무라津村信夫 노부오의 동료 시인들은, 그런 아니꼬운 자들은 아니었다. 대개 평범한 풍모를 하고 있었다. 시골뜨기인 나에게는, 그 점이 무엇보다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286p.

약속 하나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작가의 하룻밤 환상에서 발단된 것이다.

 하지만, 그 미담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분명, 그런 사실이, 이 세상에 있었다.

 여기에 작가의 환상이란 것의 불가사의함이 존재한다.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 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보지 못한 사실도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고귀한 보석이 빛을 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런 것을 쓰고 싶다는 게, 작가가 사는 보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