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엄청 내리던 날
날이 쌀쌀해질 무렵 생강과 배, 꿀을 넣고 생강청을 만들었다. 차가운 날씨에 잘 어울리는 식재료다.
호주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생강을 여기저기 다 넣어먹는다. 특히 건강식품에 관심 있는 여행자라면 인도네시아 여행 쇼핑 리스트에 ‘자무’를 넣기도 하는데 이 자무라는 것은 생강, 강황, 라임 등을 넣어 만드는 농축액으로 음료나 비누 등에 많이 쓰인다. 그중에서도 비누나 청결제가 여성 건강에 좋다고 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쌀쌀한 겨울 맛 생강 라테 너무 먹고 싶어서 배랑 생강, 꿀, 설탕을 넣고 생강청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겨우내 먹을 수 있겠지? 메뉴에 넣어볼까 하고 손님 세명에게 먹였는데 다들 알싸한 맛에 진저리를 치길래 혼자만 몰래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타난 손님! 인스타에서 봤다며 생강 라테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메뉴에도 없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이거 알싸한 맛이 입에 남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여러번 다짐을 받고서야 한잔 타드림
태어나서 생강라테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다는 손님은 너무나 취향이라며 주중에도 나타나 “쿠팡이츠라도 해주세요.” 요청을 해 날 웃게 만들었다.
(여기는 로켓 배송도 안되고, 배달 앱도 안되는 남양주 시골 마을 공장 동네다.)
어쨌든 근데 한국에도 생강 라테가 있다 생강청을 우유에 타먹는 사람도 꽤 많고, 카페 메뉴로 내는 곳들도 본 적이 있다.
입맛이 잘 맞는 손님을 만난 게 너무 반가워서 요청사항으로 당근 케이크를 만들게 되었다.
이 당근 케이크는 통밀과 오일, 당근과 호두를 잔뜩 넣고 굽는 묵직한 케이크다. 아예 손님 취향에 맞춰 프로스팅도 크림치즈를 무겁게 올리기로 했다. 오후 네시에 방문한다는 손님을 기다리며 케이크를 잘라뒀는데
눈이 온다. 하루 종일 온다. 발이 푹푹 들어갈 정도로 눈이 쎄게 온다. 아침부터 내리는 눈이 오후가 되어도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커녕 강아지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는 토요일이었다. 점점 쌓여가는 눈을 보다가 불현듯 손님 걱정이 됐다. 네시에 온다고 약속을 해서 부담을 갖고 정말 여기에 오면 어떡하지?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눈이 너무 오는데 약속한 것 때문에 괜히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세요.”
손님이 너무 좋아했다. 가긴 가야 될 것 같고 눈은 계속 와서 정말 부담을 갖고 있었나 보다.
징짜 너무 외로워서 뒷마당에 발자국 남김없이 찍기, 고양이 백 마리 만들기, 케이크 굽기 등등 혼자 놀다 지쳐 퇴근한 토요일이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시골마을 케이크 사람은 이렇게나 외로워지는 거구나.
다행스럽게도 다음날 거짓말처럼 눈이 녹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당근 케이크는 다 팔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