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공장들이 몰려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의 산업단지다. 서울에서 불과 30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동네에는 외국인이 많다.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라 하면 동남 아시안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의외로 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흑인도 많다.
ㅌ씨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G1 비자 들어본 적 있어? 요즘 외국인 손님이 많아져서 (ㅌ씨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업무가 많아 그들의 비자 유형을 알고 있다.) 물어봤더니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대. 한국은 난민 지위를 획득하는 건 까다로운데 난민 비자를 신청하는 기간에 임시로 주는 G1 비자는 신청만 하면 쉽게 받을 수 있고, 이 비자로 취업을 할 수 있어서 요즘 아프리카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고 그 기간 동안 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야. 보통의 취업이 가능한 비자를 받는 것보다 훨씬 수월해서 요즘 인기래.“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서울 촌놈은 절대 몰랐을 지방 도시의 이야기였다.
카페에 오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말을 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내용이다. 가끔 나타나는 동남아시아 노동자는 내게 꽤 친근함을 느끼나 보다. 처음 방문했을 때 너무 당황했다. (한 번도 이곳에 외국인이 온 적이 없다고 했다.)
내게 스몰토크로 꺼낸 주제가
“혼자 일하세요? 몇 시까지 일하세요? 일 끝나면 혼자 있어요?”
였기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 애청자는 혼비백산했다. 하필 이어진 두 번째 방문이 늦은 시간 손님 없는 밤이어서 더 무서웠다. 외국인이 아니어도 무서운 건 마찬가지다. 겁이 없는 편인데 이 동네는 밤이 되면 정말 더럽게 무섭다.
ㅌ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런 건 레이시스트야.”
라고 해서 조금 발끈했다.
불 꺼진 공장 동네에서 혼자 케이크 만들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불쑥 찾아와서 혼자냐 몇 시까지 있냐 이런 거 물어보면 당연히 엄청 무서운 거야! 했다.
그러다 친절한 발리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혼자 반성했다. 발리 친구들이 만약 한국에 와서 일을 하다가 카페 사람한테 말을 걸었는데 카페 사람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생각해 봤다.
세 번째 방문에서 검정 봉다리를 뒤적여 레몬 두 알을 건넨 손님은 그 후 친구와 함께 와서 차를 마셨다.
대뜸
“누나! 잘 지내셨어요?”
하길래 속으로 웃었다. 누나라니 ㅋㅋㅋㅋㅋ
어쩐지 옆 친구에게 카페 사람이랑 친하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함께 쿵짝을 맞췄다.
뭐라도 주고 싶어 레몬 두 알을 건넨 사람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싶어 시사프로그램 애청자는 혼자 머쓱했다. 다음엔 이름을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