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읽게 된 앞뒤 없는 연애편지 한 부분에 어쩐지 마음이 뭉클해져 버려서 이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걸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먼 곳에 있는 연인을 그리워하며 그를 따라나서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를 매일같이 반복하는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일까.
"선택하지 않았으니 짐작할 수 없는 삶을,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삽니다."
이 문구가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주렁주렁 달리기도 했다. 짐작할 수 없는 삶을 끊임없이 상상하며 살아간다는 건 끝없는 그리움 같은 걸까. 그때 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이 연애편지의 주인공은 시인 <백석>이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백석의 연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자야>라는 기생인데 스쳐간 짧은 인연에 기대어 평생을 백석을 그리워하며 살았다는 낭만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마치 로맨틱 끝판왕 같은 이야기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자야와 백석의 연애기간은 몹시 짧았고 백석에게는 통영의 <란>이라는 정인이 있었으며 (게다가 이 남자는 결혼을 세 번 했음) 백석 시인을 연구한 사람들은 시인이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여인은 <란>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 시절에는 문인들이 요즘의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리던 때라 키도 훤칠하게 크고 이목구비도 또렷한 백석 시인은 그야말로 인기가 어마어마했다는 소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는 원래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는데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의 서울의 3대 요정) 자야 할머니가 법정스님께 기증해 지금의 길상사가 되었다. (물론 백석과는 연관이 없다.) 백석 연구가들은 자야 할머니가 백석 시인과의 로맨스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라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남녀 사이의 일은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자야와 백석을 상상하며 혼자 실실 웃는다.
어쩌면 자야 할머니는 백석 시인을 짝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백석 시인은 95년 혹은 99년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음)에 북한에서 사망한 걸로 알려져 있다. 자야 할머니는 이산가족 찾기에 되게 나가고 싶었는데 가족이 아니라서 못 나간 걸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저렇게 애달픈 마음을 글로 써낼 수 있는 사랑이었다면 그 마음에 대해 우리가 섣불리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