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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Nov 30. 2022

발리에서 느낀 홍콩스탤지어

비디오 가게 가봤니?




 우붓 안동 골목에 (안동 아니고 Andong)  Fu Shou Noodle Club이라는 작은 중식당이 있다. 언뜻 보면 크레파스로 찐하게 색칠한 것 같은 빨강 파란색 작은 가게는 뒤로 보이는 발리의 쨍한 하늘과 잘 어울린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유명하고 바쁜 식당이라고 한다. 면이 쫄깃하고 속에 숨겨진 매콤한 양념이 한국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아 여행객들의 평도 좋다고 했다.

기대를 가지고 메뉴를 세 개나 시켰다. 시뻘건 고추기름이 둥둥 떠있는 덤플링까지! 면은 마치 수타면처럼 굵기가 일정하지 않았지만 쫄깃쫄깃했다. 나는 식초를 싫어하기 때문에 소스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에 입맛을 잃어서 면은 거의 먹지 못했고 위에 얹어진 돼지고기만 건져 먹었다. 만두가 잠겨있는 저 시뻘건 국물에도 식초 향이 한가득이라 손을 대지 못했다. 같이 간 사람은 맛있는 것만 먹는 사람인데 나를 여기로 데려온 게 이상했다.

"너 정말 여기가 맛집이라고 생각해?"

아니라는 답을 듣고서야 안심이 됐다. 애꿎은 5K짜리 (450원) 무한리필 재스민차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면을 두 젓가락 집을 때쯤 후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창밖에 땅이 무섭게 젖기 시작했다. 우기의 발리다. 카페로 도망친 다음에 비가 떨어졌다면 좋았겠지만 날씨가 내 마음대로 될 리 없다. 안동 골목은 배수가 되지 않아 금세 흙탕물이 종아리까지 차오른다. 작은 가게 안 손님들 모두 빗길을 나서는 걸 포기하고 창밖을 보고 있다. 비는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가게 안에는 90년대 유행하는 팝송이 울려 퍼진다. 분위기가 이래서일까 마치 LP로 튼 것처럼 적당한 소음이 섞여 한순간 어린 시절로 빨려가는 느낌이다. 뒤편 벽에는 한때 비디오 가게를 주름잡던 홍콩 배우들 사진이 잔뜩 붙어있다.

 우리는 비디오 가게 세대가 아니라 벽에 붙어있는 사람들이 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름 한번, 얼굴 한번 스쳐 지났던 당대 유명 인사들이니 기억을 더듬으며 영화 제목을 댄다. 90년대 홍콩 영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경삼림, 천사 같고 선녀 같던 천녀유혼의 왕조현, 여전히 세상을 떠났단 걸 믿을 수 없는 장국영,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잔뜩 세운 코트 깃에 선글라스를 낀 주윤발 형님 


 "그 노래 기억나?"

"뭔 노래?"

"주윤발 나오고 막 공중전화에서 형님 형님 하면서 죽어가면서 전화하는 거 있잖아. 거기 나오는 노래. 낭 나나낭 나나 낭낭낭나낭 ♬"

 빙글빙글 웃으면서 

"아니 모르겠는데?" 

하는 게 얄미워서 계속 귀에 대고 다시 부른다. 

 "알잖아. 이 노래 낭 나나낭 나나 낭낭낭나낭 ♬"


좁디좁은 가게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선풍기 한대만 의지한 채 떠들다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눌어붙은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놓인 알루미늄 완탕 숟가락과 윙윙 날아다니는 파리들, 작은 가게 안을 식히기엔 너무 작은 선풍기까지 마치 내가 작은 홍콩에 와있는 것 같다. 들숨이 턱턱 막히는 것마저 습한 홍콩 날씨가 떠올라 기분이 묘했다. 하루 종일 친구들 귀에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 기억나? 

낭 나나낭 나나 낭낭낭나낭 ♬





*노래 제목은 당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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