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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것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글쓰기

by 이하비

나는 언어영역 5등급이다. 5등급이란 숫자는 나로 하여금 '글'과 관련된 능력에 재능이 없음을 못 박는 숫자였다. 그렇지만 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꽤나 문자, 글과 인연이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에는 글씨를 예쁘게 써서 선생님 칭찬을 받기를 좋아하는 아이였고, 고학년에는 서예를 배우며 나만의 글씨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남자이지만 주변으로부터 글씨가 예쁘고 필기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는 물론이다. 그랬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 군생활 1년 9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가장 순수한 '나'로의 열망으로 가득했던 그때, 나는 글을 읽고 있었고 글을 쓰고 있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5등급'이라는 낙인에 갇혀서 나를 외면했던 건 우리나라 교육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제한된 시간 안에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하여 읽어내 최대한 많은 문제를 맞히게 했던 수능 언어영역. 글에 대한 깊은 이해도와 창의성은 차치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많은 일을 해내는 인간을 양산해내고자 했던 교육제도는 아니었을까 의문이 든다. (실제로 외국의 입시 시험은 주관식, 서술형 문제가 대부분이다.)


오래도록 돌고 돌아서 나를 되찾아온 지금, 나는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글쓰기로 비로소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내 안에 쌓여있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표출하며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때, 나는 말할 수 없는 자유와 동시에 안정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 매체가 꼭 글이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글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표현의 시작이자 끝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나를 이끌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 글을 쓰는 행위는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정체되지 않게 한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꾸준히 신선하게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며 불안하지 않은 존재가 되게 함에 글은 필수 불가결하다.


1년 뒤 돌아볼 이 글에서 순수한 열망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그때는 더욱 솔직한 내 모습으로 살고 있기를 바라며 결심의 글쓰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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