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미ㄹㅗㅓ
또다시 이 어두운 미로다. 이 미로도 요즘에는 무언가가 이상하다. 몇 번이고 다시 들어와도 공간이 바뀌지 않는다. 이 공간도 내가 출구를 찾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일까
마침 녀석도 내게 출구를 한 번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이건 꿈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매우 많았다. 문득 미로의 출구에 대해 궁금했다. '탈출하면 뭐가 있을까?'라며 혼잣말을 하며 그 녀석과 함께 열심히 출구를 찾기 위해 나아갔다. 출구로 가는 길은 점점 쉬워지는 것 같았다. 미로는 수없이 넓었음에도 출구와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들었다. 비록 여태껏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
출구의 형태가 변하지 않아 이전에 벽에 손을 대며 표를 해놨던 길을 따라 나아간다. 갈림길이 나올 때는 바닥과 벽에 알기 쉽게 적어놨다.
이 표시를 보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았다. 분명 이전에 내가 표시했던 길일 것이다. 가끔 처음 보는 표시도 있었다. 그것을 보면 무서웠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곳에는 나밖에 들어올 수 없었고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표시는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그 표시를 따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은 많이 소요됐다. 표시가 끊긴 곳은 이미 익숙해진 핏자국이 보이지 않았고. 그 어두운 곳을 나아가며 어렵게 길을 찾아내야 했다. 녀석은 다른 길로 갔는지 내 옆에 없었다. 보이지 않는 미로의 모서리를 타며 길을 따라가던 중 저 멀리 핏자국이 보였다.
"아, 또 돌아왔나."
라고 말했지만 아니었다. 처음 보는 공간이었다. 내 직감이 그를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 직감을 따라 그곳에 도착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뭐야…."
검은 미로 안에 있을 수 없는 붉은색으로 물이 들어버린 미로였다. 그곳은 흘린 피가 여기저기 흩날려 있었고 벽은 내가 쓴 것과 별의 표식들이 쓰여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통로이다. 내가 봤던 곳의 구조와는 다르다. 녀석의 흔적인 것인가? 이 앞으로도 이어지는 수많은 핏자국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속에 있던 두려움이 날 휘감았다.
이게 뭐라고 녀석은 이렇게 열심히 길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그 길은 숨이 막혀오는 한기가 느껴진다. 굉장히 불쾌하기에 나는 내가 들어온 길을 따라 다른 길로 돌아섰다.
이젠 힘이 빠진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일까. 아니면 그와 또 다른 이유에서 일까.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은 내겐 불가능한 현실과 같이 느껴졌다. 빛이 없어서일까 나의 상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우울하다. 괴롭다. 무섭다. 두렵다. 나는 왜 대체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왜 대체 이런 끔찍한 꿈을 꾸는 것일까. 부정적인 감정에 갇힌 나는 쓸모없는 생각의 반복과 함께 자책했다.
대체 왜 나인 것일까. 나여서 그런 것일까. 세상은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이 꿈은 나의 것이다. 이제 더는 살고 싶지 않다. 사실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 대단한 것이다. 항상 나는 여러 기분에 짜증을 느끼고 작은 감정에도 이기지 못한 나이다. 정말 한심하기만 하다.
나는 탈출에 대한 생각은 잊은 지 오래된 듯 바닥만을 쳐다보며 천천히 걸어갔다. 앞에 벽이 있을 땐 머리를 박아 아프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해서 박은 머리에는 피가 났고 얼굴을 타고 내려와 눈물이 된 듯 눈 밑으로 흘러내렸다.
"쿵"
아 또 머리를 박았다.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해?'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벽에 있는 힘껏 손을 휘둘렀다. 한 대, 두 대, 붉게 물은 내 손은 안중에도 없이 화가 멈출 때까지 마구 벽을 때렸다. 괴롭다. 아프다. 내 마음도 이 손과 같았다.
벽을 때리는 행동을 멈추고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힘이 빠진 모습으로 몸을 옆으로 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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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나의 감정이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기쁨일까?
드디어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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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출구를 찾아 '드디어'라는 생각과 함께 조용하게 녀석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소리친다. 소리친다. 머지않아 녀석도 출구를 찾은 듯 옆의 길에서 나와 마주친다.
그는 조용하지만 미친 듯이 웃으며 혼잣말을 한다.
"아, 드디어 도착했다."
그는 나의 부름에 응답조차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왔다. 내 옆을 지나치는 그를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내가 녀석을 잡았을 땐 손을 뿌리 치며, 무섭게 쳐다만 봤을 뿐 어느 말도 하지 않았다. 굉장히 이상했다.
녀석이 입을 열었을 땐 출구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녀석은 멈춰 서서 천천히 몸을 내 쪽으로 돌려 입을 열었다.
"있잖아, "
"응?"
"고마워."
말과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갔고 안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어디로 간 듯 사라졌다. 내 눈앞에서 사라졌고 그를 본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흔들린다. 무너질 듯 흔들렸다. 나의 마음이었을까? 그 미로 안은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요동쳤다. 강하게 흔들리는 미로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난 그렇게 출구로 들어갈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벽은 무너졌고 나는 그렇게 벽에 깔려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