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o:r

(16) 미ㄹㅗㅓ [ D-day 1]

by hase

해가 진 늦은 저녁 무거운 몸을 이끌고 힘겹게 일어난다. 꿈을 꿨다. 또 미로 안이었다. 하지만 그 미로에 대해서는 어째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시간은 점점 짧아져갔고 미로 안에 갇힌 채 현실의 시간은 3일이 지나있었다.


어째서인지 오늘은 미로 안에서의 일이 현실 세계의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 마디로 진짜 꿈을 꾼 느낌이다. 하지만 미로 안에서의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고 그 느낌은 지금도 여전히 내 몸에 남아 끔찍한 여운을 남겨준다. 미로의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이어서 그런가 이젠 아침이 보고 싶다. 빛이 보고 싶다. 모니터 속 인공적인 빛이 아닌 나를 환하게 비추어 주는 자연의 빛이 보고 싶다. 하지만 이젠 볼 수 없다.


나는 무슨 이유에서 일까. 도대체 왜 힘든 것일까. 내가 잘못한 게 뭐가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참 한심하다.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미움받을 만한 짓도 하지 않은 나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책한다. 나도 안다. 남들이 알아줄만한 힘듦이 아니다. 고작 자책이라는 이유로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유난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볼품없는 힘듦에 동정심을 품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내가 왜 이런 삶을 만들고 그려 나갔을까. 차리리 소중한 사람을 잃어 힘들어하면 모를까. 사고가 나서 장애가 생겼으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나의 힘듦을 이해해 줬을 것이다. 분명.


이제 나의 방에는 쓰레기 더미에 묻어있는 붉은색 무언가로 가득하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줄곧 숨겨왔다. 괜찮은 척하고 싶었다. 내게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알아봐 줬으면 했다. 조금은 더 힘든 모습을 보여줘도 좋았을까. 이런 추한 나의 모습을 지금 이 순간에서 조차도 숨겼어야 했을까. 그 녀석에게도 여태껏 숨겨왔다. 나의 이런 힘듦이 부끄러웠다.


사실은 혼자라는 사실이 굉장히 괴로웠다. 어째서일까 언제부터였을까 내겐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 분명 이런 나라서 버림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믿었음에도, 그런 현실을 직시했음에도, 지금까지 꾹 참고 버텨왔다.


검은 미로는 싫다. 나의 모든 부정을 끌어올린다. 흰 미로는 그 뒤로 내게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흰 미로 안에서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듣기 좋았다. 편안했다. 아직도 선명하게 머릿속을 맴돈다. 그 목소리는 분명 좋다고 했다. 뭐가 좋았을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봐줬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땐 배가 고프지 않았다. 1등도 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하얀빛은 나를 비추어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야 해야 했던 과제도 분명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00시 00분이 지나면 제출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분명 많은 시간에 있었는데. 무언가에 갇혀 지낸 듯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제 오늘 까진데. 얼른 해야…. 아 맞다, 이젠 괜찮구나."


하지만 괜찮았다. 결심이 섰으니 이젠 필요 없다. 나에게 주어진 힘든 일들에게서 벗어날 것이다. 과제? 그거 한 번 못 하면 좀 어떤가. 나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용서해주려 했다. 이젠 모두 괜찮으니 말이다. 생각에 잠긴 나는 그 어느 날보다 평온한 상태였다. 평소 어딘가에 막힌 듯 답답했던 나의 가슴은 오늘만큼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젠 진짜 빛을 보고 싶다.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빛이 너무 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엄청나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내일 뜨는 해가 보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엔 내 참을성이 참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 들어섰음에도 나는 떠있는 아침의 햇빛을 보지 못한다. 괜찮다. 이젠 내가 찾아 나설 것이다. 이젠 나의 모든 것에, 내 생각에 대해 다짐했다.


오늘, 아니 00시 00분 나는 나를 부르는 하늘의 빛을 찾아 그곳으로 가려한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편안 곳. 지금 이 평온한 감정, 기분들을 가지고 있으니 내겐 두려움 따윈 없었다.


여태껏 없었던 용기가 나에게 도움을 준다.


이 부정에게서 떨어질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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