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라 시인의 시집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제목에 이끌려 구매해버린 시집. 제목에 이끌려 구매한 책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달랐다. 마법에 홀린 듯 읽기 시작하여 다 읽고 나서 외쳤다. "잘 선택했네." 제목이 딱 내 책인 것 같았다. 내 책이어야 할 것만 같았다.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았다. 작가가 나에게 해줄 말이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고시생이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중이다. 작년에도, 올해도 매일 볼펜을 굴리며 공부를 한다.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면 내 삶이 큰 차이는 없이 비슷하지만 작년은 저녁이 쉽게 다가왔다.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독서실에 박혀 스탠드 불빛 아래 공부를 한다. 오전 타임이 끝나고 꿀 같은 점심시간. 15분 낮잠 후 5시간 정도 공부하면 슬슬 해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저녁이 오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할 일은 태산인데, 해는 지고 있으니 하루가 끝나가는 느낌이다. '나는 해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벌써 저녁이라니.' 이렇게 매일 시간에 쫓겨살았다. 저녁은 유독 나에게만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라는 제목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시집을 구매하면 제목에 나온 구절이 나온 시를 제일 먼저 찾는다. 이 책은 제목에 홀려 구매했기 때문에 책을 훑듯이 넘겼다. 제목은 뭉클. 시 제목을 보자마자 뭉클.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다. 가끔 저녁에 갬성이 충만해질 때 이 감정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일시적인 마음 씀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알았다. 뭉클, 뭉클이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죄여 오는 느낌을 혼자 해소할 수 없어 음악에 기대던 순간들. 갬성을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모두 털어 넘기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을 맞이한 순간들. 감정에 북받친 나머지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 모두 뭉클이었다.
무거운 어둠을 이불 삼아 덮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