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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보기 Feb 11. 2016

13. 리옹으로 가는 길

기차 옆좌석에 장애인이 앉았다

니스를 떠날 날이 다가왔다. 이제 싱글룸을 쓰는 사치는 끝이었다. 내 앞에는 호스텔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때는 아쉬웠지만, 결과적으론 덕분에 다양한 국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였다.


니스역에서 유레일패스를 개시했고, TGV 티켓을 끊었다. 이태리에서 유레일패스를 쓰는 것은 별로 경제적이지 않다는 인터넷에서의 조언을 참고했다.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시간과 재정 문제로 들르지는 못하지만 가보고 싶었던 마르세유, 엑상프로방스, 아비뇽을 거쳐간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니스에서 출발한 TGV는 앙티베(Antibes)와 영화제로 유명한 칸(Cannes)의 해안을 따라갔다.

기차에서 바라본 해안 풍경은 조깅하는 사람들, 주말을 맞아 나들이 온 가족들로 여유로워보였고, 지중해는 맑은 하늘을 배경삼아 푸른보석이라는 수식어가 아쉽지 않을정도로 아름다웠다.

처음엔 카메라를 들이밀어 찍어보다가 TVG라 기차 속도가 너무 빨랐고 무엇보다 사진이 눈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느끼고는, 카메라를 집어넣어버렸다. 그래서 사진이 이렇다..


그때까지는 기차가 한산했고, 옆자리에도 아무도 앉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툴롱(Toulon)이라는 도시에 기차가 정차했고, 내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았다.

나보다 어려보이는 십대후반에서 이십대초반의 남자였는데, 직원이 친절하게 자리까지 안내해주었다.

그 사람이 앉자마자 이상한 냄새가 났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발달장애인인 것 같았다.

나는 순간 너무 당황했다. 목적지인 리옹에 도착하려면 아직 세시간 가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먼 곳에서 온 젊은 동양 여성 여행자 옆에 기차를 혼자 탄 발달장애인 청년을 앉히다니요'

하늘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TGV는 지정좌석제였다. 그건 운명같은 것이었고,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사람은 자리에 앉더니 가져 온 과자를 꺼내 흘리면서 허겁지겁 먹었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내가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은 과자를 다 먹고는 화장실에 가서 휴지를 뜯어오더니 자신이 흘린 부스러기를 깨끗이 닦고 손까지 씻고 자리로 돌아왔다.

표를 확인하는 직원이 다가오자 그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밀봉된 봉투를 직원에게 건넸고, 직원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봉투를 확인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은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우선적으로 그를 안내했다.


나에겐 일련의 장면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기차를 탈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자신이 흘린 것을 깨끗이 치우도록 교육받았다는 것도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에서 보호자 없는 장애인을 마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버스에서는 장애인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길거리에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장애인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심지어 장애인이 보호자없이도 혼자 기차를 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장애인이 하나의 온전한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환경이었다.


나는 과거에 우연히 장애인 탈시설과 관련한 포럼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만해도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고, 흔히 만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것과 똑같은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므로 시설에 갖혀있어야 하고, 오히려 남한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보호자가 없다면 바깥을 자유롭게 돌아다녀서도 안된다는 그런 생각들 말이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의 집을 갖기를 원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했고, 자유롭게 세상구경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먼 곳에서 이미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대우받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바뀌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대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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