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의 바다 색깔 만큼 널 사랑해
프랑스 니스에 도착한 다음날은 호텔 싱글룸을 잡은 핑계로 하루종일 방에서 뒹굴거리며 여독을 풀었다.
그런데 호텔방이 너무 건조한 탓에 목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다.
국물있는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일본라면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날 점심 때 니스 시내의 식당으로 향했다.
역시나 인터넷 블로그 검색의 영향인지 한국인 두 명이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묘한 소외감을 느끼며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일본라멘을 주문했다.
직원은 대부분 일본인이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프랑스인처럼 보이는 백인 1명 뿐인듯 했다.
놀라웠던 건 내가 식사를 마칠 때 즈음 식당 내 풍경이었다.
다른 한국인 테이블을 제외한 모든 테이블은 프랑스인이 차지하고 서툰 젓가락질을 하며 다양한 일본 음식을 맛보고 있었다.
일본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도 k-pop 영향으로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유럽에서 일본은 뭔가 아시아 문화의 선두주자 느낌이랄까. 많은 유럽인들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일본식당을 찾아 간접적으로나마 일본 문화를 경험해보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부러웠다.
일본 라멘을 먹고 소화도 시킬겸 니스 해변이 보이는 니스성을 오르기로 했다.
전망대에 가는 길에 맞은 편에서 구경을 마친 커플이 오고 있었는데, 내 옆을 지나쳐가던 그 순간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다.
"I love you as color here(난 여기 색깔만큼 널 사랑해)."
사랑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그런 말을 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데 그 순간 정작 그 여자의 표정은 태연했다는 것이 함정이다.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전망대에 도착해 니스의 바다색깔을 보는 순간 나는 그 남자의 감정을 눈으로 들여다 보게된 것만 같았다.
피렌체와 밀라노에서의 일들을 겪으며 이제 여행을 시작한지도 20일 정도가 지나서 아름다움에 무뎌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아말피 해안에서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 울컥하고 있었다.
문득 고시공부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공부하다 너무 갑갑하고 답답해질 때, 높은 곳에 올라가 탁 트인 풍경을 보고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항상 시간에 쫓겼고 어디로 가야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건 일종의 꿈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내가 그때 그렇게 원했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이 순간이 다시 또 너무 감사해졌다.
나는 어느새 꿈을 살고 있었다.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여행이 내가 죽을때까지 잊지못할 여행이 되리라는 생각말이다.
내 꿈은 이미 조금 다른 방식으로나마 실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