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것
밀라노는 이탈리아 여행 중 거쳐 온 도시들 중 가장 크고 현대적이었다.
패션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련되고 멋진 사람들도 많았다.
오후 세시 쯤 밀라노 호스텔 입구에 도착했는데, 같이 체크인하는 한국인 모녀를 만났다.
호스텔 스탭은 체크인 하며 여권을 확인하더니, 딸과 내가 나이도 똑같고 이름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나이도 동갑에다 이름도 한 글자만 빼곤 같았다. 신기한 인연이었다.
연희씨 모녀는 이태리 여행을 마치고 밀라노를 거쳐 스위스로 간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혼자서 여행왔냐고 묻곤,
"어떻게 혼자 여행할 생각을 했어요? 대단하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혼자 여행해서 대단하다는 말은 40일 여행하면서 어머니로부터 들은 것이 유일했다.
어디서 왔냐, 어디를 여행하냐는 말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수 있는데, 나는 너무 낯선 물음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무도 내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그만큼 여자 혼자 여행자들이 흔했고, 본인만 충분히 조심한다면 안전했다.
사실 난 어머니랑 둘이 유럽 여행하기로 결심한 연희씨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물론 어머니의 물음에 연희씨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다음날은 드디어 보름 간의 이태리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국경을 넘는 날이었다.
밀라노에서 니스까지 약 8시간 동안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침 8시 경이었다. 날씨는 흐렸다.
큰 캐리어를 끌고 길을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중년 여성과 젊은 남성이 함께 걸어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들을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젊은 이태리 남성은 중년 여성을 앞세우더니 중년 여성이 나를 지나치자 나를 보며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밀어 날름거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그것은 인종차별적인 행동이었고, 성희롱이기도 했다.
수준낮은 인간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내 갈길을 갔지만, 기차에서 보내는 8시간 내내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피렌체에서도 인종차별적인 행동을 당한 적이 있었다.
밤 길을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젊은이 무리가 걸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중 한 여자애가 나를 '웍'하며 놀래켰다.
처음에는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외국에선 흔한 인종차별적 행동이라고 했다.
물론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대부분의 이탈리아노들은 친절했다.
그러나 불쾌했던 몇몇 일로 인해 이태리에 대한 감정은 복합적으로 변했다.
문득 돌아보니 바티칸을 안내해주셨던 가이드분은 이탈리아어를 잘하지만 인종차별때문에 일부러 여행자인척 영어를 쓴다고 했던 말도 떠오른다.
뒤에 여행했던 프랑스, 독일, 스위스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던 걸 생각해보면, 이탈리아의 시민의식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스스로를 반성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길에서, 대중교통에서 동남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만났을 때, 슬금슬금 피하거나 인상을 찌푸렸던 적이 없었던가.
그들도 우리나라에서 나와 똑같은 불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단지 외모가 자신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한다는 게 너무나도 부당하게 느껴졌다.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낸다는 것이 쉽지않은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