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민족국가에선 겪지 못한 인종문제 수수께끼
베니스에서 기차로 1시간반 정도 떨어진 베로나로 향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라는 부제가 달려있기도 한 그 부제만으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모으는듯 했다. 또한 많은 글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산타루치아역에서 베로나로 가는 기차를 탔다. 우리나라 무궁화호 같은 기차였다.
그런데 다음역이 지난 후에 갑자기 흑인 3명이 근처를 왔다갔다 하더니 2명은 내 맞은편에 앉고, 1명은 내 뒤에 앉았다.
나는...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고민했다. 나의 두려움은 단지 인종차별적인 마음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난 그들이 내 주위를 둘러싼 이후로 얼어있었고 너무나 불편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다음역인 파도바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내리는 틈을 타 다른 칸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최대한 안전해보이는.. 웬만하면 이탈리아노들 근처로.
내 옆자리는 아줌마였고 내 맞은편은 책읽는 학생이었으며 내 대각선은 바깥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젊은 남자였다. 나의 편견인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학생이나 바깥풍경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진 않았다.
그제서야 난 안심하는 마음이 들었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다음역인 비첸차역에 도착했을 때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 둘이 내렸는데, 그 중 대각선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가 나에게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나는 처음에 무슨말인지 못알아들어서 '익스큐즈 미?'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영어를 못하는지 내가 다리밑에 놔뒀던 짐과 내가 매고 있던 가방을 가리키면서 계속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second class'라는 말 뿐이었다. 그 남자가 내리고 나서야 나는 그 말 뜻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이등석이라 아무 사람들이나 많이 타서 소매치기가 많으니까 니 짐 잘챙겨라."는 말인 것 같았다. 역시 바깥풍경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은 달랐다ㅎㅎ 하지만 난 그 말을 듣고 다시 얼어붙었다. 그 흑인들이 떠오르며 역시나 나의 촉이 맞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사히 베로나에 도착했는데도 흑인이나 아랍계 사람들만 마주치면 나는 얼어붙었다. 설상가상으로 베로나 역은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터라 낮이었지만 지나는 사람들은 많이 없었고 차들만 쌩쌩달릴 뿐이었다. 게다가 어떤 아랍계 남자 두명이 지나가면서 휘파람을 부는 바람에 더 예민해졌다.
베로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도 나와있지 않은 도시였고 폰배터리도 다되어가서 앞이 깜깜한 상황이었다. 구글맵에 '줄리엣의 집' 하나 쳐서 거기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시티센터에 도착했는데 운좋게 바로 인포센터를 찾을 수 있었다. 알고보니 그 줄리엣의 집이 진짜 줄리엣의 집이 아니었지만..
피렌체에서의 일 이후로 모든 상점의 이탈리아노들이 다 나를 돈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져서 괴로웠다. 베로나에서 점심먹으러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그 할머니는 친절했지만 뭔가 불편했다.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음식을 구입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줄까... 베니스에서 예쁜 상점에 들어갔다가도 그냥 나오면 내가 인사를 해도 무시하는 상인들 때문에 더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 같다. 그들은 진정 베니스의 상인일 뿐인걸까...
줄리엣의 집을 찾아갔는데 많은 관광객들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볼 건 없었다. 알고 갔기 때문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아쉽긴 했다.
하지만 베로나에서의 진정한 여행은 거기서부터가 시작이었다. 베로나의 골목은 내가 본 모든 이탈리아 도시의 골목 중에 가장 아름다웠고, 베로나를 두르고 있는 아디제강은 베로나를 감싸고 있는 어머니의 팔 같았다. 아디제 강을 따라서 산책하는데 그 평화로움은 잊을 수 없다. 베로나에서 본 유일한 동양인인 한국 남자애 두명도 버스커버스커 노래를 틀어놓고 둘이서 따로 걸으면서 베로나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나 인종 문제가 뇌리를 놓지 않았다.
아디제강을 산책하는듯 보이는 나이많은 이태리 노인과 그를 부축하는 젊은 아랍계 사람을 보았다.
보자마자 감이 왔다. 아랍계 사람은 이태리 노인을 부양하는 일을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인종으로 인한 계층의 나뉨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랍계나 흑인이나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걸까. 노인 부양하는 일이나 노점 혹은 도둑질 같은 거 말이다.
본질을 파고 들어가보면 자본과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될 것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경계하는 집시들도 어쩌면...?
이건 그저 삶의 방식이고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인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복합된 문제인건가.
우리나라 같은 단일민족국가에서는 많이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혼란스럽다.
그냥.. 파도바역에서 내가 자리를 옮겼을 때 그 흑인들이 내가 인종차별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길 바랐다.
이건... 나 역시 그렇게 대우받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문화는 한국의 문화와 많이 다르다. 식당에 가서 식사할 때는 종종 나는 내가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느낀다.
이건 익숙치 않고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들이 나로 하여금 내가 교양이 없거나 매너 없는 동양인으로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교양이나 매너는 돈을 많이 쓰면 다 해결되는 것 같다...
돈을 아끼려고 시작하면 언어가 필요하고, 매너와 지식이 필요하다.
슬슬 머리가 아파왔다. 얼른 스위스에 가서 아름다운 자연이나 실컷 바라보면서 힐링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