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19일 (화)
1년여 만에 서울둘레길 걷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데 출발부터 뭔가 잘못 됐다. 서울둘레길은 말 그대로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길로 총 길이는 157km인데, 이를 8개 코스로 나눠놨다. 그중에 제8코스(북한도봉산코스)는 다른 코스에 비해 거리(33.7km)가 길기 때문에 2번에 나눠 걷곤 했는데, 오늘 8코스를 걸을 계획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서울둘레길 걸을 계획을 세웠었는데, 엊저녁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8코스 출발지점인 구파발역을 검색했었다. 원래 제1코스부터 시작하려면 도봉산역으로 갔어야 했는데. 그리고 오늘 아침 무심코 종로3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고 구파발역까지 갔는데, 그때서야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도봉산역으로 갔으면 ‘서울창포원’으로 가서 그곳부터 걷기를 시작해야 했었는데, 구파발역에서는 어디로 먼저 걸어야 하지? 왜냐하면 제8코스를 마지막에 걷고 서울창포원 1층에 있는 ‘서울둘레길 안내센터’에 가서 ‘완주인증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제7코스(구파발역~가양역)를 거꾸로 걸어야 하나? 그러다가 어차피 제8코스를 하루에 다 걸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오늘은 8-1코스(구파발역~ 성북생태체험관)를 걷기로 했다. 그래서 앵봉산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구파발천을 향해 걸었다.
서울둘레길 제8코스는 북한산둘레길과 겹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구파발역에서 구파발천을 따라 2km쯤 걸어 북한산둘레길 제8구간인 ‘구름정원길’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엔 선림사(禪林寺)와 제8코스의 첫번째 스탬프 찍는 곳이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니 ‘북한산’을 도안한 거였다. 이제 서울둘레길은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서울둘레길은 대부분이 산길이고, 역시 계단이 많다. 서울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이라서 둘레길도 산길일 수 밖에 없고, 그러니 수도권의 여느 산들처럼 계단 오르기를 피할 순 없다. 그래도 드문드문 흙길도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지난번 산행에서도 몇 번 목격했는데, 산길 옆을 군데군데 파헤친 곳이 많이 있다. 아마도 멧돼지의 소행일 것이다. 다행히 낮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 정도로 온 산을 파헤쳐놓은 것 보면 그 수가 꽤 많은 것 같다. 그러니 먹이를 구하러 죽음을 무릅쓰고 도심까지 내려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람쥐에게 도토리와 밤을 돌려주세요!’란 플래카드가 군데군데 걸려있지만, 그 옆에서 밤을 줍는 사람들도 있다. 어차피 공생하는 관계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밤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반면, 다람쥐(물론 다른 동물들도 먹을 테지만)는 밤과 도토리를 부지런히 모아 놓아야 겨울을 날 수 있을 테니까 다람쥐에게 양보하는 게 백번 맞는 것 같다.
09시24분, 북한산둘레길 제7구간인 ‘옛성길구간’까지 왔다. 서울둘레길 제8코스는 북한산둘레길을 거꾸로 걷는 셈이다. 그리고 옛성길의 시작점이자 구름정원길 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제8코스 두번째 스탬프 찍는 곳이 놓여있었다. 이곳 스탬프의 의미는 탕춘대성이라고 한다. 앞으로 탕춘대성을 지나게 될 것이란 예고다.
구파발역에서 6km 지점에 ‘북한산생태공원’이 조성돼있다. 이곳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드디어 오늘 그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됐다. 그렇지만 대단할 것 없는 조그만 공원일 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서 큰 길을 건너면 ‘장미공원’이 있는데, 이곳에도 장미는 별로 없다. 앞으로 더 가꾸겠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면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장미가 몇 그루 뿐이다. 그곳에 샘물이 있어 목을 축였다. 걷는 동안 물을 많이 마시면 갈증이 더 자주 오기 때문에 가능한 한 산행 중에는 물을 잘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의 물이 아주 시원하지도 않으니 이래저래 물로 입을 헹구고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09시55분, ‘서울시선정 우수조망장소’에 도착했다.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지만 너무 먼데다가 바로 앞에는 큰 나무들이 많아서 잘 보이진 않았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2007년 8월 현재 91곳의 ‘우수경관 조망장소’가 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그러니 아주 특별한 곳은 아니란 얘기다.
10시13분, 탕춘대성 암문에 도착했다. 옆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탕춘대성 (蕩春臺城)은 서울성곽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성으로, 방어기능을 보완하고 군량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연산군의 연회장소인 탕춘대가 가까이 있어 탕춘대성이라고 불리게 됐으며, 한성 서쪽에 있어서 서성(西城)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길이는 5.1km인데 훼손되고 무너졌던 것을 1977년 복원정비했다고 한다.
10시18분, 이제 ‘옛성길구간’이 끝나고 ‘평창마을길구간(북한산둘레길 6구간)’이 시작됐다. 이름 그대로 평창마을을 걷는 길이지만 산길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스팔트 길이지만 경사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또 다른 등산을 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나무그늘조차 없으니 내려 쬐는 햇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기예보를 봤을 때 오늘은 분명 30도가 넘지 않는다고 했는데, 느낌으로는 한여름과 다를 게 없다. 땀으로 옷이 다 젖었고, 산길을 걸으면서 나무에 스친 팔목이 울긋불긋 변한데다 그 부위가 엄청 가렵다.
11시54분, 북한산생태공원에서 7.4km 걸어 세번째 스탬프가 있는 ‘형제봉 입구’에 도착했다. 구파발역에서부터 따지면 13.4km를 걸어온 셈이다. 평지길이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산길이라서 만만치 않은 거리다. 이곳에서 세번째 스탬프(진흥왕순수비)를 찍고 조금 늦은 점심을 먹었다. 평상시 낮12시면 늦은 게 아니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아침을 먹고 4시간 가까이 산길을 걸었기 때문에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자마자 또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그래도 오늘의 목적지인 성북생태체험관까지는 5km가 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북한산둘레길 5구간인 ‘명상길 구간’이다.
12시40분, 명상길 구간이 끝나고 다시 아스팔트 길이 시작되는 솔샘길 구간 (북한산둘레길 4구간)이다. 이 길에는 버스들이 많이 다닌다. 전에는 너무 피곤해서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은 견딜 만하니 목표했던 지점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산행하면서 언제나 가장 큰 난관은 발이 아픈 것인데, 오늘은 심하지 않은 것 같아 너무 다행이다.
13시05분, 시내버스 종점이기도 한 성북생태체험관 입구에 도착했다. 눈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봤지만 서두를 건 없다. 다음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까. 문이 열려있길래 올라탔는데, 아직 교통카드 체크도 되지 않았다. 운전기사 말로는 조금 있다가 작동시킬 거라고 했다.
잠시 기다렸다가 다른 사람이 올라탄 후에 다시 카드를 댔는데도 체크가 되지 않았다. 운전기사는 카드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다른 카드를 사용해보라고 해서 지갑에서 다른 카드를 꺼냈더니 체크가 됐다. 아침에도 멀쩡하던 카드가 왜 이래?
운전기사에게 가까운 전철역을 물어 ‘북한산보국문역’에서 내렸다. 그리고 전철을 탔는데, ‘북한산우이역’으로 착각해서 다음에 갈아타야 할 ‘성신여대입구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보국문역’에서는 두 정거장만 가면 되는데, ‘우이역’에서는 열 정거장을 가야 해서 그만큼 여유를 부리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것이다. 결국 종점인 ‘신설동역’까지 갔다가 ‘성신여대입구역’으로 되돌아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