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2일(금)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한양도성길에 대한 뉴스를 보게 됐다. 그래서 산에 가는 걸 잠시 미루고 한양도성길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일기를 찾아보니 지난 2020년 6월 마지막으로 한바퀴 돈 후 3년 만에 다시 가는 길이다. 엊그제 가려고 했다가 발목이 계속 아파서 포기한 후 하루를 지내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무리해서라도 다녀오기로 하고 오늘 아침 출발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서는 한양도성 18.6km를 다 걷고 지정된 장소에서 스탬프(흥인지문 관리소, 숭례문 관리소, 돈의문박물관마을 안내소, 말바위 안내소)와 인증사진(목멱산 봉수대터, 인왕산 정상, 청운대 표석, 낙산 정상)을 찍어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완주인증서’를 준다고 했다.
한양도성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백악구간(창의문~ 혜화문 4.7km), 낙산구간(혜화문~ 흥인지문 2.1km), 남산구간(장충체육관~ 백범광장 4.2km), 인왕구간(돈의문터~ 창의문 4.0km) 순으로 나와있는데, 이중에는 흥인지문구간(흥인지문~ 장충체육관 1.8km)와 숭례문구간(백범광장~ 돈의문터 1.8km)이 빠져있다. 이 거리를 더하면 18.6km가 된다.
나는 편의상 흥인지문에서 한양도성길 순례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곳엘 가려면 개롱역에서 5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동대문역’에서 내려 7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 바로 흥인지문이 보이는데, 첫번째 스탬프를 찍어야 하는 관리소가 보이질 않는다. 우선 흥인지문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에게 관리소 위치를 물으니, 바로 옆을 가리켰다.
몇 걸음 지나 관리소로 갔더니 입구에 스탬프함이 있고, 스탬프를 찍을 지도도 함께 있었다. 나는 한양도성 앱도 깔았기 때문에 스마트폰에 있는 앱을 켰더니 자동으로 스탬프가 꽝 찍혔다.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
발목은 여전히 아프지만 ‘한양도성길’ 안내판을 보면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은 전에 동대문운동장이 있던 자리로, 잠실에 종합운동장이 생기면서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로 새롭게 단장됐지만, 옛날 문화재인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복원해놓았다. 이수간문은 조선 초기부터 남산 개울물(남소문동천)을 도성 밖으로 흘려 보냈던 시설인데, 2칸의 반원형 문으로 이뤄져 있어 이간수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큰길 쪽에는 사람들도 많고 복잡하지만, 오늘 걷는 길은 한가하다. 신호등을 몇 번 건너고 다음 경유지인 ‘경희문’으로 향한다.
광희문(光熙門)은 서울 4소문 중 하나로, 시구문(屍口門, 시신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문) 또는 수구문 (水口門)으로 불렸는데, 6.25 전쟁으로 문루와 여장이 파괴됐다가 남쪽으로 조금 옮겨져 복원됐다. 그 옆에는 “한양도성길을 따라 걷는 순성길은 서울의 내사산(백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고, 사대문(숭례문 흥인지문 숙정문 돈의문터)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유산을 지나는 18.6km의 역사와 문화체험 길”이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걷는 길 주변에는 한양도성(漢陽都城)에 대한 설명문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에 따르면, “한양도성은 조선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여러 차례 고쳤다. (중략) 한양도성에는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뒀는데, 이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중략) 숙정문 광희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
순성길은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돌다가 장충체육관 앞에서 신라호텔 뒷길을 따라 국립극장까지 이어진다. 여기부터는 남산자락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곳곳에 ‘남산둘레길’과 ‘한양도성 순성길’ 표시가 세워져 있어서 잘 보면서 걸어야 한다.
약간 완만한 경사로를 걷다가 오른쪽으로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이 이어졌다. 성벽을 따라 계단을 설치해놨는데, 마지막에 ‘653’이란 숫자가 적혀있다. 그 전에, 각자성석(刻字城石) 설치구간을 지나는데 안내판을 보니,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말하는데, 천자문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이름을 새긴 것, 축성책임 관리와 석수이름을 새긴 것으로 나눌 수 있으며, 280개 이상이 전해지고 있다.”
09시38분 남산 도착. 이곳에는 ‘서울의 중심점(The Geographical Center of Seoul)’이 설치돼있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결정을 위한 측량 출발점인 대한민국 최초의 경위도 원점이었던 곳에 설치한 것으로, 국가기준점과 지리적 삼각점으로서 측지와 지적측량에 쓰인다고 한다.
평일 오전이어서인지 남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N타워로 올라가는 문도 아직은 닫혀있다. 오전 11시부터 연다고 한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랑의 열쇠’가 아주 많이 걸려있다. 그 옆에 ‘봉수대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첫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다. 셀프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마침 여자가 지나가길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감사합니다.”
목멱산(木覓山) 봉수대터는 경봉수(京烽燧)라고도 불렸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됐던 곳이다. 1993년, 김정호의 <청구도> 등을 참고해 남산의 5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 남산을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한양도성 유적전시관까지 설치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단은 높고 참이 넓다 보니 한발 한발 내딛는 게 위험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오늘따라 왼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무릎이 번갈아 아파오니 한발씩 걷을 때마다 힘이 든다.
한양도성 유물전시관 주위로는 ‘안중근’ 관련 기념물들이 아주 많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기념관도 있다. 이런 기념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먼저 역사적인 사실은 안중근이 1909년 10월, 제1대 한국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이듬해 3월 사형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되고 본격적인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결국 행동으로 인해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또한 지금의 글로벌한 의식을 놓고 보면 안중근은 일종의 테레리스트였다. 또 하나, 서초구에는 윤봉길 기념관도 크게 세워놨는데, 대내적으로는 훌륭한 사람들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외적으로는 ‘테러리스트’를 너무 국민영웅으로 받들 고 있다는 게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10시29분, 두번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숭례문에 도착했다. 전엔 못 보던 보초들이 서있다. 뉴스를 보니, 2008년 화재 후 13년 만인 2021년 6월부터 개방했다는데, 그 후론 와 보지 않아서 오늘 처음 보게 된 것 같다.
안내문을 보니, 숭례문(崇禮門)은 조선 태조 7년(1398) 한양도성 남쪽대문으로 세워졌고, 세종 30년(1448)성종 10년(1479)과 고종 때 수리했다. 2008년 2월 방화 후 2013년 4월 복구작업을 마쳤다. 숭례문은 한때 국보 1호였지만, 2021년 11월 문화재보호법령이 개정되면서 지정번호가 없어졌다.
이제 세번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돈의문터로 향한다. 이정표를 보니 숭례문에서 2km쯤 된다. 다른 때 같으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발목이 아프니 쉽지 만은 않다. 가는 길에 아펜젤러 공원과 배재공원, 정동길 등을 지난다.
11시5분, 돈의문터에 도착했다. 설명문을 보니, 돈의문은 한양도성의 서대문(西大門)으로 정동사거리 한복판에 있었다. 1915년 일본이 도로확장을 위해 돈의문을 철거하고 건축자재용으로 일반에 매각했다. 최초의 돈의문은 1396년 한양도성 건설과 함께 지었다. 풍수지리상 이유로 1413년 (태종13) 서전문(西箭門)이 만들어지면서 성문기능을 넘겨줬다가 1422년 (세종4)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이 이곳에 세워졌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는 이에서 유래했다.
세번째 스탬프 위치는 ‘돈의문박물관마을’ 안내소 외부라고 했는데, 돈의박물관마을 간판은 보이지만 안내소는 어딘지 모르겠다. 더구나 건물입구에는 ‘서울도시재생이야기관’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니 건물 안에 안내소가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럼 어디 있지?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쪽 언덕으로도 ‘돈의문박물관마을’ 간판이 보인다. 그렇지만 계단보다 수월한 왼쪽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안내소가 보이고 그 안에 스탬프도 놓여있다.
세번째 스탬프를 찍고 야외에 설치된 탁자에 앉아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이제 어떡하지? 당초에는 윤동주 문학관이 있는 곳까지 걸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인왕산을 지나 4.2km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시각이 12시가 거의 다 됐고, 윤동주 문학관까지는 아직도 2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하니 오늘은 여기서 걷기를 마치기로 했다.
그렇지만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광화문역까지 1km 가량 또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쯤이야! 20분쯤 걸어서 광화문역에 도착해 교보문고에 잠시 들렀다가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