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6일(화)
오늘은 한양도성 순성길 둘째날이자 완주하는 날이다. 걷는 거리는 인왕산 구간에서 낙산구간까지 10.8km지만 인왕산과 백악산 등을 지나는 길이라 대부분 경사가 급한 계단이 많다. 그래도 어제 병원에서 발을 치료하고 약까지 먹었더니 컨디션은 꽤 좋은 편이다.
출발지점으로 가려면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가 돈의문박물관마을까지 360m쯤 걸어가야 한다. 서대문역에서 내렸는데 휴일이어서인지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무렴 어때? 돈의문박물관마을까지는 지척이다.
지난번에 한양도성 순성길을 다녀온 후, 시기별로 성벽 쌓는 돌들이 달랐다는 걸 알고 성벽을 보면서 어느 시기에 쌓았는지 가늠해보는 재미도 있다. 한양도성은 1396년 처음 쌓은 이후 크게 세 차례(세종숙종순조) 고쳐 쌓았는데, 후대로 갈수록 성돌이 네모지고 커졌다. 즉, 처음에는 자연석을 그대로 쌓다가 세종연간에는 모서리를 둥글게 가공해서 쌓았으며, 숙종연간에는 40~45cm 정도의 장방형으로 만들어 쌓았다. 마지막으로 순조연간에는 60cm 크기의 정방형으로 다듬어 쌓았고, 현재도 성벽을 꾸준히 보수하고 있는데 돌의 크기는 많이 작아졌다.
08시11분, 인왕산 초입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길이 무척 가파르다. 한양도성은 평지가 아닌 지형에 맞게 쌓았기 때문에 대부분 구간이 오르내림이 심하지만, 특히 인왕산과 백악산을 오르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이곳은 자유스럽게 지나다닐 수 있지만 주위에는 군사시설이 많아서 곳곳에 사진촬영 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왕산 초입에는 드론촬영 금지 안내문에, 수도방위사령부의 승인 없이 드론을 날릴 경우 2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써있다.
인왕산 올라가는 길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후 경비를 위해 30개 이상의 경계초소를 설치했는데, 탐방로를 단계적으로 개방하면서 대부분 철거하고 3개소만 기념물로 남겨놓았다고 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인지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도 왼쪽으로 롯데월드타워가 흐릿하게 보이는 건 좀 아쉽다. 먼지 때문인지 구름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08시47분, 가파른 철제계단과 바위계단을 올라 가픈 숨을 몰아 쉬며 인왕산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남산 봉수대에 이어 두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해서 먼저 찍는 사람을 기다렸다가, 옆에 있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삿갓바위에 앉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인왕산 정상에 세워놓은 이정표를 보니 출발지점이었던 돈의문터까지 2.5km, 다음 지점인 창의문까지는 1.8km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2.5km를 걸어온 셈이다. 오늘 걸을 거리가 10.8km이니 이제 시작이다.
08시59분, ‘부부소나무’를 지났다. 전에도 그 자리에 서있었을 텐데 처음 보는 느낌이다. 한 소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다른 소나무에 파고든 모양새의 연리지(連理枝)다. 성벽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사진 찍기가 쉽진 않다.
윤동주 문학관에 거의 갔을 무렵 잠시 길을 잘못 들었다. 아니, 그 길로 가도 순성길을 찾아갈 수는 있지만 꽤 돌아가는 길이라서 가던 길을 되돌아 윤동주 문학과 뒤켠으로 내려갔다. 하긴 그러느라고 전에 보지 못했던,
바위에 새겨진 ‘서시’ 문학비를 볼 수 있었다.
<별헤는 밤> <서시> 등을 쓴 윤동주 시인의 민족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시 세계를 기념하기 위해 종로구의 용도폐기 된 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조성했다는데, 건물은 허름해 보이지만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2012), 서울특별시 건축상(2014) 등을 받았다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찻길을 건너 창의문으로 올라가기 전에 의로운 경찰관을 기리는 동상 2개가 서있는데, 무슨 날인지 경찰관계자(경찰청장 등)들이 보낸 화환이 즐비하다. 이곳을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이다. 하긴 의로운 공직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좋은 나라의 표상일진데, 이들을 푸대접한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사는 인간들인가?
찻길 바로 옆에 ‘청계천 발원지(發源地)’란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이곳에서 동북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150m 지점에 있는 약수터라는데, 어디인지 정확한 위치는 알지 못하겠다. 오늘도 북악산(백악산)을 지나갔지만 약수터는 보지 못했다.
여기서 계단을 몇 개 오르면 사소문(四小門) 중 북문에 해당하는 창의문 (彰義門)이다.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으로,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가 그래도 남아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17) 다시 세웠으며, 이곳 경치가 개경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해서 자하문(紫霞門)이란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창의문 바로 위에 있는 창의문 안내소를 지나면 본격적인 급경사 순성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5분 남짓 걸어 자북정도(紫北正道) 표지석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자북정도는 직역하면 ‘자하문 북쪽의 정의로운 길’이지만, “국가안보의 길”을 뜻한다고 하며,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을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 때 세웠다고 한다.
백악산을 오르는 길 옆에는 “경사가 심해 위험할 수 있으니 핸드레일을 잡고 올라가라”는 안내문이 있을 정도다. 그래도 땀이 많이 나고 숨이 가프지만 올라가는 길이 내려오는 것보다 덜 위험할 것 같다. 올라갈 때 힘들면 쉬어가면 되지만, 내려오면서 잠시라도 한눈 팔다간 이내 고꾸라질 것만 같다.
09시55분, 창의문을 떠난 지 25분 만에 백악산(白岳山, 342m)에 도착했다. 백악산은 순성길에서 몇 십m 비켜나 있는데, 이곳 역시 오르막이라 숨이 가프다.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정상석 옆 그늘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정상석 사진을 몇 장 찍고 다시 순성길로 내려왔다.
09시59분, ‘1.21사태 소나무’를 지났다. 169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했을 때 경찰들과 교전한 15발의 총탄 흔적이라고 한다. 지금은 총탄자국에 시멘트를 바르고 자리를 표시해놨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1968.4.1)됐다고 한다.
10시03분, 세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 청운대(靑雲臺, 293m)에 도착했다. 먼저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나도 몇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친절하게도 가로세로로 여러 장 찍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가는 길에 백악곡성(白岳曲城)에도 올라가봤다. 순성길에서 벗어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곳이다. 곡성은 주요 지점이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래 성벽 일부분을 둥글게 돌출시킨 것을 말하는데, 백악산과 인왕산에 하나씩 있다. 힘들게 오르긴 했지만, 바람도 시원하고 높은 곳이라 서울시내 멀리까지 잘 보인다.
‘한양도성 조망장소’에 도착했는데,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보현봉’이라고 했다. 그 옆으로 형제봉과 승가봉 등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함께 보이는데, 보현봉이 이렇게 도드라지게 보이는지 미처 몰랐다. 전에는 북한산에서 제일 높은 백운대려니 했었다.
소나무 보호 군락지를 지나고 숙정문(肅靖門)에서 사진을 몇 장 찍은 다음 마지막 스탬프가 있는 말바위 안내소로 갔다. 숙정문은 한양도성 북쪽대문으로, 현존하는 도성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이며,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었다.
말바위 안내소에 도착해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스마트폰 앱을 켰는데, 스탬프가 찍히지 않는다. 뭐지? 다른 세 곳에서는 모두 종이에 스탬프 찍는 곳에서 앱에도 표시가 떴는데, 여긴 왜 이러지? 안내소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앱은 숙정문에서 뜨도록 맞춰져 있고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단다. 아무튼 앱에 스탬프를 받으려면 숙정문까지 다시 다녀와야 한다. 헐!
다행히 멀지 않은 거리지만 오르막이 있어서 힘도 들고 귀찮다. 그래도 어쩌겠나! 숙정문에 다다라서 앱을 켜니 스탬프가 찍힌다. 휴! 이로써 스탬프 찍기가 모두 끝났다. 이제 말바위 안내소로 다시 가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사람들이 나무벤치를 모두 차지하고 앉아있다. 어쩔 수 없이 주린 배를 달래가며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계속 걸었다.
11시15분, 드디어 점심 먹을 곳을 찾았는데 너무 더워서 준비해간 햄버거를 먹을 수가 없다. 포도 몇 알과 에너지바를 먹고 뜨거운 커피도 한잔 마셨다. 그러고 보니 다음부턴 커피 대신 시원한 물을 갖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요기만 하고 다시 일어나 걷는다.
골목길을 지나 혜화문(惠化門)에 도착했다. 혜화문은 한양도성 동북쪽 문으로, 창건 당시 홍화문(弘化門)이라고 했다가 1511년 혜화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영조 때 문루를 지었는데, 일제 때 헐렸다가 1994년 본래보다 북쪽으로 옮겨 새로 지었다.
이제 순성길 막바지다. 낙산공원에 가서 ‘낙산공원’ 글자안내판 앞에서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디인지 모르겠다. 오늘따라 안내소에도 사람이 없어 물어볼 수도 없다. 어쩌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흥인지문 바로 옆에 공원 표지판이 있었던 같은데, 거긴가? 일단 가보기로 했다. 흥인지문에 가까워질수록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벽을 구경하면서 흥인지문까지 내려왔는데, 어! 여기는 ‘낙산공원’이 아니라 ‘흥인지문공원’이다. 어쩌지? 하긴 되돌아가도 어딘지 모르니 어쩔 수 없다. 완주인증서를 신청하면서 우겨볼 심산으로 우선 인증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두 번에 걸쳐 한양도성 순성길 일주를 마쳤다. 날이 더워서 옷은 이미 다 젖었다. 흥인지문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동대문역으로 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귀가했다. 그런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갈아 타다가 큰 사고를 당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보통은 오른쪽으로 서서 올라가고 왼쪽으론 걸어서 올라가는데, 왼쪽에 한 사람이 서있길래 옆으로 비켜달랬더니 불평을 했다. 무시하고 급하게 올라가다가 발을 헛디디면서 종아리에 무리가 왔다. 근육경련인지 파열인지 모르겠지만 무척 아프다.
통증을 참아가며 개롱역에서 내려 진통제를 사려고 했는데, 휴일이어서인지 약국들이 모두 모두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와서 서랍을 뒤져 오래된 진통제를 찾아 먹었지만 여전히 아프다. 파스까지 덕지덕지 붙였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밤을 보내고 내일아침까지 계속 아프면 아무래도 병원엘 가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