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둘레길 5코스(관악.호암산 코스), 사당역~석수

by 이흥재

2023년 10월21일 (토)


™ 사당역 ~ 관음사(觀音寺) ~ 낙성대(落星垈) ~ 관악산 일주문(5.7km) ~ 삼성산 성지(三聖山 聖地) ~ 호압사(虎壓寺) ~ 석수역(7.3), 총 13km


오늘은 서울둘레길 5코스를 걷는다. 엊그제, 서울둘레길만 걷는 게 지루할 것 같아 양평의 청계산을 다녀오려고 등산로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갔지만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는 바람에 돌아와야만 했다. 잠시 오는 비라면 조금 맞으면서 등산해도 됐었겠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 내내 그것도 꽤 많이 내릴 것이라고 해서 산행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정말 돌아오는 길에서는 물론 집에 왔는데도 비가 많이 내려, 잘 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안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주말이니 차가 많이 밀릴 것 같아, 청계산에 다시 가는 걸 다음으로 미루고 서울둘레길 걷기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안 사실인데, 서울둘레길 홈페이지를 보니 5코스가 관악•호암산코스로 바뀌어 있다. 아니, 호암산? 처음 들어보는 산 이름인데. 전에는 관악산 코스라고 했었는데, 언제 바뀌었지? 그리고 그 지역의 대표적인 산은 관악산 말고도 삼성산(481m)도 있는데, 왜 호암산(393m)으로 했지?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5코스 출발지점은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서면서부터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잔뜩 흐렸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다. 어제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도 비 소식은 없었는데. 그래서 일단 걷기로 했다.


그런데 곧바로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첫번째 스탬프를 찍고 관음사 일주문에 도착하니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다른 등산객 한명도 일주문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길래 나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잠시 쉬었다.


10분쯤 있다가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아 언덕을 올라 관음사 경내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좀전보다 더 많이 내린다. 마침 옆에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 의자까지 있어서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앉아있었다.


30분쯤 지나 비가 그치는 것 같아 관음사 경내 여러 건물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사찰입구에 있는 안내문에는 관음사의 내력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관음사(觀音寺)는 신라말역인 895년(진성여왕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비보사찰(裨補寺刹, ‘비보사상’은 도선이 불교교단을 재정비하고 전국토를 재개발하기 위해 수립한 사상체계)로, 유서 깊은 관음기도도량(觀音祈禱道場)이다. 1716년 (숙종42) 극락전을 개축했고, 1924년 삼성각과 극락전을 다시 개축했다. 그러나 이후 황폐화된 것을 1973년부터 30여년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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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기 시작했다. 관음사 앞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사당역까지 1.1km, 관악산 일주문까지는 4.6km가 남았다. 그러니까 비를 피하느라고 고작 1.1km 걷는데 1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벌겠다고 뛰어갈 수는 없지 않나! 다행히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이내 햇빛이 나기 시작했다.


비온 뒤라 산길이 축축하니 먼지가 날리지 않아 좋다. 뭐든 좋기만 하고 나쁘기만 한 건 없다.


오늘도 ‘쉼터 도서함’ 설치된 곳을 지났다. 빛바랜 책 몇 권이 보관돼있는데, 언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아있다. 누구의 아이디어로 왜 이런 곳에 설치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것도 설치하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참 쓸데 없는 짓을 했구나! 생각하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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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전망탑이 있다. 이 또한 왜 만들어놓았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간혹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용하긴 하겠지만 가성비는 거의 좋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집단은 망하기 십상’이라던데, 꼭 그 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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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31분, 낙성대에 도착했다. 이곳은 고려 때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으로, 장군이 태어날 때 그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74년 6월 이곳에 기념공원을 조성했으며, 이곳에 장군을 모신 사당인 안국사(安國祠)가 있다. 안국문(安國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강감찬장군 사적비와 낙성대 삼층석탑을 구경하고 있는데, 웨딩사진을 찍는 사람들인 듯, 한복을 입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도 만났다. 마지막으로 안국사를 한바퀴 돌았는데, 입구에는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과 함께 입구를 테이블로 막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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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을 지나 강감찬장군 동상이 세워진 광장으로 가보니 ‘관악도시농업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주위에는 여러 부스들을 설치해놓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중앙무대에는 국악인인 듯한 사람들 여럿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낙성대에 들어갈 때만 해도 우렁찬 민요가 울려 퍼졌었는데, 내가 갔을 때는 거의 마무리단계라서 구경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알지도 못하는 공연시간까지 기다릴 수는 없어 관악산 일주문을 향해 계속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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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15분, 서울대학교 정문을 지나 ‘관악산공원’이란 편액이 걸린 관악산 일주문에 도착했다. 주말이어서인지 서울대 정문은 물론 일주문 근처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차림새를 보니 서울대 정문에는 서울대를 구경하기 위해 온 학생들 같고, 일주문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산행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다. 일부는 산을 향해 걸어가고 여러 무리들이 일행을 기다리는지 일주문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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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오늘의 두번째 스탬프를 찍었다. 그리고 평지길을 얼마간 걷다가 물레방아가 설치된 곳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전에는 이 길로 가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산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물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른다. 그저 한가한 길만 걷다가 사람들이 많아지니 조금 신경이 쓰이는 정도다.


11시쯤 서울대학교에서 3km 정도 거리에 있는 삼성산 성지를 지났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들렀던 곳인데, 오늘은 ‘미사 중이니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어서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구경했는데, 좀더 가까이 가보니 신부가 여러 사람을 세례명으로 호명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겠고, 토요일에 미사 드리는 이유도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 보는 광경이다. 좀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방해될까 염려돼 먼 발치서 보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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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조선 2대 교구장인 주교와 다른 두 신부들의 유해를 안장한 곳이라고 한다. 세 성인을 기념하기 위한 월례미사가 이들의 순교일인 매월 21일이라는데, 오늘 하필 그곳을 지나게 됐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11시15분, 호압사에 도착했다. 입구에 세워진 호압사 창건에 관한 안내문을 보니, “태조가 왕사(王師)인 무학의 조언대로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지을 때 꿈속에서 반은 호랑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해서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을 쏘도록 했지만 괴물은 여러 차례 짓던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란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한 노인이 있어, 무슨 묘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가만히 가리키는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었다. 꿈에서 깬 태조는 무학을 불러 말을 전했고, 무학은 호랑이 기세를 누르기 위해 호암산 (虎岩山)에 호압사를 창건하게 했다.” 나는 이곳 나무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은 다음 호압사 경내를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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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를 지나면서 루트가 약간 바뀌었다. 전에는 가파른 산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코스였는데, 지금은 산책용 나무데크를 따라 산중턱을 한참 동안 가다가 원래의 코스로 합쳐졌다. 아니, 계속 데크를 따라 갔어도 됐는데, 정확한 길을 몰라 둘레길 표시를 따라 갔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니 두 길이 만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지만 이미 지나온 걸 어쩌나! 다시 돌아갔다 올 수는 없지 않나! 데크가 끝나는 곳에는 시내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도 새롭게 설치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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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25분, 세번째 스탬프를 찍고 500m 정도 더 걸어 최종 목적지인 석수역에 도착했다. 아침에 비 때문에 1시간 정도 지체된 것을 감안하면 무사히 산행을 마친 셈이다. 신길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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