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10일(화)
요즘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지만, 계속 걷기엔 좀 지루한 것 같아 변화를 주기 위해 오늘은 양평의 청계산(658m)을 다녀오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그곳은 대중교통이 원활치 않아 자동차를 갖고 가야 하는데, ‘엔진오일 부족’ 경고등이 들어오던 게 생각났다. 바로 무슨 사고가 나는 건 아니겠지만 찜찜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긴급하게 계획을 바꿔서 서울둘레길을 계속 걷기로 했다. 오늘은 4코스로 수서역을 출발해 대모산과 우면산 자락을 지나 사당역까지 가는 루트다. 이정표를 보니 수서역에서 양재시민의 숲까지 10.7km, 그리고 거기서 사당역까지 7.6km여서 18.3km를 걸어야 한다.
수서역 6번 출구를 나와 100m쯤 가면 첫번째 스탬프가 있다. 그리고 그곳부터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워밍업도 없이 바로 본게임인 셈이다.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대모산은 높이 293m로 산 모양이 늙은 할미와 같다 해서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태종의 헌릉(獻陵)을 모신 後 대모산(大母山)으로 고쳤다. 구전(口傳)에 따르면, 산 모양이 여승의 앉은 모습이나 여자의 앞가슴 같아 대모산란 설이 있다.” 어디서 봤길래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다행히 5분 정도 오르니 산능선 흙길이어서 걷기에도 좋다. 그렇지만 1km쯤 걸으니 낮은 오르막이 있다. 그래도 그 정도 쯤이야!
대모산 자락을 지나는데 지금도 사방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11년 7월, 집중호우로 우면산에 대형 산사태가 난 後 대부분 정비된 줄 알았는데, 골짜기가 워낙 많고, 시간이 오래돼 재정비해야 할 곳이 생겼나 보다.
걷다 보니 서울둘레길 4코스 루트가 좀 바뀐 것 같다. 아니면, 정비 중이라 임시로 루트를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서역에서 1시간40분쯤 걸어왔는데, 느닷없이 서울로봇고등학교를 지나게 됐다. 서울둘레길을 여러 번 걸었지만 처음 만나는 풍경이다. 맞은편에 있는 수서제일교회 건물 벽에는 여러 업체 간판이 빼곡히 붙어있다. 이것 또한 생소한 장면이다.
일원장미공원을 지나는데 등산화 세척장이 있다. 산을 다니면서 먼지털이개를 설치해놓은 곳은 많이 봤지만 세척장은 처음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등산화를 세척하기엔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수서역 3.9km 지점에서 불국사(佛國寺)를 지나게 됐다. 안내문을 보니, “고려 공민왕 때 진정국사가 창건한 절로, 사하촌(寺下村) 농부가 받을 갈다 땅 속에서 돌부처가 나와 갖고 있다가 진정국사가 현 위치에 절을 짓고 약사 부처님을 모셔 ‘약사절’이라고 불렸다. 그 후 고종 때 대모산 헌인릉 (獻仁陵)에 물이 나와 주지스님이 수맥을 차단해서 해결했는데, 이를 고맙게 여긴 고종이 불국정토(佛國淨土 부처나 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를 이루라고 ‘불국사’란 사명(寺名)을 내렸다.” 그래서 이 절의 본당은 약사대전(藥師大殿)이다.
수서역에서 8.2km 지점에 있는, 10년 전인 2014년 에티오피아에 봉사활동 가기 위해 한 달간 교육 받았던 ‘코이카 글로벌 인재개발원’ 근방을 지나고 강남대로 고가도로를 건넌 後 여의천변을 따라 가다 양재시민의 숲으로 접어들었다.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을 지나 두번째 스탬프를 찍고 잠시 쉬면서 초콜릿바와 커피를 마셨다. 시민의 숲은 1986년 11월 공원으로 개장했는데, 우리나라 최초로 공원에 ‘숲’ 개념을 도입한 곳이라고 한다.
시민의 숲을 지나 잠시 큰 길가를 걷지만 이내 다시 산으로 접어든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또 가파른 계단이 나타난다.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하고 걷는 길이기 때문에 주저할 일은 없다.
시민의 숲에서 2km쯤 갔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꼬마들 무리가 산을 오르고 있다. 앞에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가 아이들이 다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사당역을 800m쯤 남겨둔 지점에서 세번째이자 오늘의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이제부터 가파른 포장도로를 내려가야 한다. 그곳에도 많은 사업장과 주택들이 있는데, 도로경사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주차한 차들이 불안해 보인다. 저러다 미끄러지진 않겠지? 겨울에 눈이 쌓이면 더 미끄러울 텐데! 그땐 아예 그곳에 주차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집들은 그래도 주택 옆에 주차장이 있어서 괜찮은데, 대로변에 세워놓은 차들은 어쩌나, 괜한 걱정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간다.
사당역에서 집까지 멀진 않지만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야 해서 번거롭다. 지하철 앱으로 검색해보니 잠실과 천호에서 갈아타라고 나오는데, 늘 하던 대로 교대와 오금에서 갈아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