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2일(화) 흐림
개롱역~ 오금역~ 구파발역~ 704번 버스~ 북한산성입구 정류장~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563m)~ 대서문(大西門)~ 새마을교(2.0km)~ 중성문 (中城門)~ 중흥사~ 북한산 대피소(北漢山 待避所)~ 용암문(龍岩門)~ 백운봉암문 (白雲峰暗門)~ 백운대(白雲臺, 4.1km)~ 대동사(大東寺)~ 보리사~ 새마을교 (2.6km)~ 서암사(西巖寺)~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1.6km)~ 북한산성입구 정류장(563m) 총 11.4km
구랍(舊臘) 31일, 송년산행을 가기로 작정하고 새벽에 일어나 이른 아침까지 먹고 집을 나섰는데, 비가 온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눈 예보만 있었는데 비가 내리니 출발할 수가 없어 집으로 되돌아와 모자란 잠을 보충했었다. 산행 중에 비를 만난다면 어쩔 수 없이 맞아야겠지만 시작부터 비를 맞으며 갈 수는 없었다. 눈이라면 조금 더 나았을 테지만.
그리고 신년산행이라면 어제(1월1일) 다녀왔어야 했겠지만, 이틀 연속 새벽에 일어나는 게 부담스러워 오늘로 산행을 미룬 터였다. 그런데 뉴스를 보니 어제 사람들이 많이 몰려 북한산이 꽤 복잡했었다고 하니 차라리 잘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구파발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북한산성입구로 가는 704번 버스가 막 떠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차를 기다리는데 15분이나 남았지만 어쩔 수 없다.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입구로 가는 버스는 704번과 34번 뿐인데, 두 버스가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한다는 정보가 떴다. 한참 기다렸다가 34번 버스가 1분쯤 먼저 왔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가 70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에서는 나를 포함해 2명이 내렸는데, 다른 사람은 산에 가는 복장이 아니다. 이른 시간이긴 해도 거리는 한산하다. 하긴 어제 많은 사람들이 신년기념 산행을 했을 테고, 오늘은 평일이니 없을 만도 하다.
조금 가다 보니 ‘빽다방 빵연구소’가 보인다. ‘빽다방’은 우리 동네에도 있어서 알고 있었는데, ‘빵연구소(PACK’S BAKERY)’는 처음이다. 그런데 왜 앞에다 ‘빽다방’을 붙였을까? 괜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문을 열진 않았지만 내부에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빽다방 빵연구소’도 프랜차이즈였다.
오늘도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첫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 대서문 방향으로 간다. 왼쪽 계곡길보다 거리가 조금 더 길지만 포장도로라 걷기 편해서다. 하긴, 내려올 때는 계곡길로 오기로 했다.
대서문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대서문은 북한산성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내(城內)에 마을이 있었을 때는 주미들이 이용하던 문이기도 했다. 지금 문루는 1958년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
무량사(無量寺)를 지나는데, 여러 중년남녀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나도 몇 장 찍으려고 했었는데, 그들의 사진 찍는 시간이 길어져서 한장만 찍고 지나갔다. 그런데, 무량사 앞에 있는 설명문을 보면, “고종 후궁인 순빈(淳嬪) 엄(嚴)씨는 이곳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영친왕(英親王)을 낳았다. 그래서 이 절은 순빈의 원당 (願堂)이 됐으며, 경기도 전통사찰 1호로 지정됐다.”
전에 ‘북한동 역사관’이란 간판이 걸렸던 건물에 도착했는데,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출입구 옆에 조그맣게 ‘자원활동가 센터’라고 쓰인 간판이 붙어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쉼터로 용도가 바뀌었나 보다. 하긴 전에 역사관으로 운영될 때 한번 들어가본 적이 있지만 인상적인 전시물은 거의 없었다.
2016년 준공된 새마을교를 건너, 오늘은 중성문을 지나는 ‘완만한 길’로 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백운대까지는 4.1km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반면, 왼쪽 ‘가파른 길’로 가면 2.6km다. 그렇지만 이 길은 내려올 때 이용하기로 작정한 길이다.
인근 사찰에서 이용하는 주차장을 지나 조금 가니 왼쪽 산기슭에 석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불상(佛像)인지 문인상(文人像)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왜 이곳에 이런 석상을 세워놓았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그리고, 이곳부터 급경사 길에 눈이 얼음으로 변해 걷기 어렵지만, 다행히 바로 옆에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오늘 같은 등산로 조건이면 아이젠을 신고 가야 했는데, 사방이 온통 눈이니 어디 앉을 곳이 없어 등산화 만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심스럽게 한발씩 올라간다.
중성문을 오르는 길도 역시 미끄러운 급경사다. 그래도 이미 아이젠 신을 기회를 놓쳤으니 미끄러지지 않게 오르는 수밖에 없다. “대서문에서 이곳까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차단성 (遮斷性)인 중성(中城)을 쌓았는데, 그곳에 설치된 성문이다. 문루는 1998년 복원했다.”
‘아름다운 북한산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고 해서 붙여진 산영루(山映樓)란 정자를 지나 중흥사(重興寺)로 향한다. “중흥사는 고려말 고승 보우가 소규모로 중수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숙종 때 도성방어를 위해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큰 사찰로 증축했다. 1915년 홍수로 파괴됐다.”
하지만 1994년 중흥사지(重興寺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2년 대웅전과 요사채가 중건되고 2017년 만세루(萬歲樓)와 전륜전(轉輪殿)이 복원됐으며, 요즘은 템플스테이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중흥사를 지나면 곧바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가면 대남문이 나오고 오른쪽 산길을 오르면 백운대로 가는 길인데, 거리는 아직 2.4km가 남았다.
다시 가파르고 미끄러운 산길을 조심스럽게 올라 용암사지(龍巖寺址)에 도착했는데, 지금은 1968년 EMPOR 회원들이 지어놓은 산장(山莊)이 있다. 하긴 산장이라고 해봐야 기둥과 지붕만 있어서 대피소라고 부르는 게 너 나을 것 같다. “용암사는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로, 북한산성을 쌓을 때 동원된 승병(僧兵)이 머물던 곳이었는데, 갑오개혁 때 승병이 해산되며 쇠락했다가 한국전쟁 때 대부분 파괴됐다.”
이 산장을 지나 조금 오르면 진짜 ‘북한산 대피소(北漢山 待避所)’가 있다. 이곳은 벽도 있고 테이블도 있어서 꽤 오랜 시간 쉬어갈 수 있겠다. 그러나 이곳에서 취사는 할 수 없도록 돼있기 때문에 폭우 등 비상시에 싸 갖고 온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 될 것 같다.
이제 백운대까지는 1.65km밖에 남지 않았지만 가파른 눈길이어서 오르기에 매우 조심스럽다. 다행히 군데군데 설치된 계단은 오르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단 오르는 걸 싫어하지만 이럴 땐 얼마나 요긴한지 모르겠다.
09시54분, 용암문(龍岩門)을 지났다. “북한산성 대동문 북쪽 암문으로, 1711년(숙종37) 세워졌다. 용암봉 아래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하며 , 우이동으로 통한다. 용암문 상부 여장은 1996년 복원했다.”
눈 쌓인 노적봉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멀리 백운대 정상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보인다. 그리고 그곳부터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도 다른 코스로 올라온 사람들인 것 같다. 하긴 중간에 없던 사람들이 목적지에서 모이는 것은 낯선 풍경도 아니다.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이다.
백운봉암문을 지나면서 아이젠을 신을까 했는데, 사방에 눈이 쌓여서 앉을 만한 곳이 없다. 심지어 암문 내부에도 눈이 쌓여있다. 아마도 바람이 불어서 옮겨온 듯하다. 앞선 사람들도 아이젠 없이 올라가니 나도 도전해보기로 한다.
비탈길에서 낯선 동물을 만났다. 여느 때 같으면 사람을 피해 도망갔을 텐데, 사람 곁에서 계속 머무른다. 앞서 가던 사람이 가방에서 뭔가 꺼내려고 하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 겨울이어서 먹을거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져서 생존의 방편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같다.
10시45분, 드디어 백운대 정상에 도착했는데, 먼저 올라온 사람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것 같지 않은데도 정상에 세워진 태극기는 어느 때보다도 힘차게 나부낀다. 백운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고 곧바로 내려와 바로 밑에 있는 평평한 곳에 앉으려 했지만 역시 눈이 많아 앉을 수가 없다. 눈이 조금 덜 쌓인 바위에 앉아 아이젠을 신으려는데 다리에 쥐가 난다. 그래도 하산에 대비해서 억제로 아이젠을 신었다. 올라올 때는 무게중심이 위로 가서 덜 미끄러울 테지만 내려갈 때는 잠깐의 실수로라도 미끄러질 것 같아 예방하기 위해서다.
결국 백운대 너럭바위에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성벽 옆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커피와 햄버거를 먹었다. 그런데 햄버거는 반 밖에 먹지 못했다. 땀에 젖은 옷에 바람을 맞으니 으스스해서다.
다시 백운봉암문을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 이번엔 오른쪽 ‘가파른 길’로 내려가기로 한다. 그런데 올라오는 길에 비해 눈이 거의 없다. 이 정도면 아이젠을 신을 필요가 없었지만, 마땅히 벗을 만한 곳이 없어 더 내려가보기로 한다. 그렇지만 눈이 없는 돌길을 아이젠을 신고 걸으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결국 적당한 곳을 찾아 아이젠을 벗으니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대동사(大東寺)를 지나 하산을 끝내고, 보리사를 지나쳐 이번에는 ‘계곡탐방로’로 내려가기로 했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1.6km로 올라왔던 길보다 조금 짧지만 길 상태가 좋지 않아 훨씬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12시15분, 서암사(西巖寺)를 지났다. “서암사는 북한산성 축성 이후 산성수비를 위해 지어진 사찰로, 을축년(1925년7월) 대홍수로 매몰됐다. 2006년부터 발굴 및 복원사업이 진행중이다.” 그래도 전에 왔을 때는 대웅보전 현판도 없고 건물도 나무색 그대로였는데, 지금은 현판도 달리고 색깔도 조금 입혀져서 사찰건물처럼 보이긴 했다.
다시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버스를 타기 위해 큰길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 내가 타고가 야 할 704번 버스가 지나간다. 지금은 뛰어봐야 소용없으니 빨리 걸어가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로 한다. 그렇게 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안내문에는 다음 배차까지 아직 15분이나 남았단다. 그래도 어쩔 수 있나!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