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중산행(雪中山行), 과천 청계산

by 이흥재

2024년 1월9일(화) 눈


오늘은 차를 갖고 강촌 삼악산(655m)엘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폭설(暴雪)이 내릴 거란 일기예보가 있어 가까운 청계산으로 목적지를 바꿨다. 눈을 맞으며 산행할 수는 있지만 눈 때문에 도로사정이 나빠져서 혹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청계산은 가까운 곳이니 조금 늦게 출발해도 괜찮지만, 산에 갈 때마다 늘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이른 아침을 챙겨먹고 집을 나섰는데, 아직은 눈이 내리진 않았다.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금역, 양재역에서 2번이나 갈아타고 청계산입구역에 내렸는데, 아침 7시24분인데도 주위는 아직 밝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두운 것도 아니어서 걷는데 지장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싸락눈이 조금 내릴 뿐이다.


오늘도 마을입구에 있는 미륵당(彌勒堂)을 지난다. 미륵당 안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석불입상(225cm)이 있다고 하는데, 언제나 문이 닫혀있어서 실물을 본 적은 없다. 앞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불상은 큰 기둥 같은 모습이고 표면에 호분(胡粉)이 두껍게 칠해져 있다. 이 불상의 영험(靈驗) 함이 알려져 주민들이 1년에 한번씩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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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입구에 있는 상가들은 이른 시간이라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몇 명 보인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든다. 오른쪽 길은 옥녀봉을 거쳐 가는 길이고, 왼쪽은 매봉까지 2,200m란 이정표가 서있다.


시작부터 수많은 계단이 이어지고 그 옆으로 좁은 급경사로가 있지만 오늘처럼 눈이 쌓인 산길에서는 경사로가 더 미끄러울 수 있어서 조금 더 힘들지만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특히 아직은 아이젠도 신지 않은 상태라 가능한 한 조심하는 게 좋다.


앞뒤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두셋 보인다. 그중 남녀 한쌍은 어찌나 빨리 걷는지 나를 지나쳐 간다. 그런데 조금 오르다 보니 벤치에서 쉬고 있어서 이번에는 내가 그들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두번째 갈림길에서 그 사람들이 또 다시 나를 지나쳤지만, 나는 그들과 다르게 왼쪽길로 갔다. 이정표를 보니 그들이 간 오른쪽 길은 매봉까지 800m고, 왼쪽길은 1,000m로 조금 더 멀다. 그만큼 경사가 덜 급하다는 건데, 걷다 보면 어느 길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처음 가는 길이니 한번쯤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두 길은 헬기장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경사가 조금 덜하다. 그렇다고 평지는 아니어서 땀은 계속 난다. 게다가 눈발이 점점 커진다. 이젠 함박눈이다. 요즘은 산에 갈 때 우산을 갖고 다니지만 산행하는데 너무 번거로울 것 같아 우산을 펴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옷은 계속 젖는다.


오늘도 ‘돌문바위’를 지나 ‘특전용사 충혼비’에 또 들른다. 청계산에 오를 때마다 가는 곳이다. 이곳은 1982년 공수기본 250기(난 1979년, 204기로 공수기본교육을 받았다) 대원들이 자격강하를 위해 이동하다가 짙은 안개로 수송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한 군인들을 기리는 곳이다. 그들의 유해가 국립서울현충원 27번 묘역에 안치돼있다는데, 늘 생각은 하면서도 아직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올해는 어떻게든 현충원을 방문해봐야겠다.


‘매바위’를 지나 드디어 매봉(582.5m)에 도착했다. 실제 청계산 최고봉은 망경대(616.3m)지만 그곳은 군사지역이어서 가본 적이 없다. 정상에서 사진이라고 한장 남기고 싶은데 아무도 없으니 찍어달랄 수 없고 셀프로 찍는 건 별로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배경만 몇 장 찍고 그냥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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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올 때는 아이젠을 신지 않고 왔지만, 내려갈 때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아이젠을 신었다. 신고 있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그렇게 미끄럽진 않다.


조금 내려오다가 갈림길을 만났는데, 당초 내려가려던 왼쪽길에 아무런 발자국이 없어 왠지 더 기분이 좋다. 내가 처음 발자국을 남길 수 있으니까.


내려오면서 보니 청계산(淸溪山)에 대한 설명문이 두 곳이나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청룡산(靑龍山)이라고 불렸다. 과천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보면 청계산은 좌청룡(左靑龍)이라 청룡산이요, 수리산은 우백호(右白虎)라 백호산(白虎山)이라 했다”고 한다. 다른 설명문을 보니, “청계산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라고 한다.”


하산하면서 본 이정표에는 청계산입구(원터골)부터 매봉까지가 3,050m로 돼있다. 그러니까 올라갔던 길보다 800m쯤 더 긴 셈이다. 그만큼 경사가 완만하다는 거고 내려가는 길이니 거리가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오늘도 딱따구리를 만났다. 길 바로 옆에 있는 나무인데도 높으니까 잘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날씨까지 흐려있으니 사진을 찍어도 너무 어두워 보인다. 그런데, 딱따구리는 인기척이 나는데도 모른 체하며 열심히 나무를 쪼아대고 있다.


내려오는 길에 이제 올라가는 사람들을 몇몇 만났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는데 그 정도는 감안하면서 가는 사람들이니 괜찮겠지? 그중에 한 여자가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느냐?”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니까 사람이 없으면 무서워서 그런다고 했다. 대낮에 사람 말고 뭐가 무섭다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온 세상이 하야면 헛것이라고 볼까 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올라갈까 그냥 내려갈까 망설이다가 앞서 가는 사람이 보이니까 일단 올라가 보겠다고 했다. 뭐, 마음대로! 조심해서 올라가라고 말해주곤 이내 내려왔다.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했는데, 옷이 땀에 젖어 으스스하지만 갈아입기도 귀찮아서 그냥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10시가 다 되가는데도 신분당선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예 서있기도 어렵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지하철을 타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양재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탔는데 대부분의 자리가 비어있다. 이 시간이면 이게 정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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