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30일(화)
사당역 4번 출구~ 연주대(응진전)~ 연주암~ 과천향교~ 과천역
아침을 일찍 챙겨먹고 지하철을 2번 환승(올릭픽공원역, 종합운동장역) 해 사당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갔는데, 7시20분인데도 주위가 밝지 않다. 아직 일출 전이라 그런가, 날씨가 너무 흐려서 그런가? 그래도 눈이나 비가 오지 않으니 그대로 출발이다.
잠시 걷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승방길(길이름도 오늘 처음 확인했다)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간다. 이 길은 서울둘레길 5코스(사당역~석수역)를 걸으면서 갔던 길이다. 길가에 <관악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오늘 등산코스는 관악능선을 따라가는 꽤 가파른 산길이다.
관악산 안내도를 지나자마자 첫번째 갈림길을 만났다. 전에 서울둘레길을 걸을 때는 관음사(觀音寺)를 지나는 왼쪽 길로 갔었는데, ‘연주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올라가려니 꽤 가파르다. 시작부터 헉헉거리며 올라가보니 ‘관악체력센터’에서 서울둘레길과 다시 만났다.
그렇지만 그도 잠시. 관악체력센터를 돌아 나오는 이정표(오늘의 목적지인 연주대까지 4.2km다)를 따라 왼쪽의 서울둘레길이 아닌 곧장 올라가는 급경사길을 택했다. 오르는 내내 돌계단과 나무데크 계단의 연속이다.
7시50분쯤 왼쪽으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일출시간이 이렇게 늦었나? 산속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오른쪽 멀리 이지러지고 있는 달(오늘이 음력 12월20일이다)이 높이 떠있다. 해와 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데, 오늘 그걸 보게 됐다.
07시57분, 산스장을 지나는데 몇몇 남자들이 가벼운 운동을 하고 있다. 차림을 보니 산에 올라가는 것 같지는 않고, 운동하러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하긴 올라오는 자체가 운동이 되긴 하겠지. 그렇지만 변변한 운동기구도 없는데, 굳이 여기까지 올라와서 운동을 한다구? 아무렴 어때, 알아서들 하겠지.
산스장을 지나자마자 다시 왼쪽으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뭐, 어차피 산에 오르는 길이니 올라가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평지를 걷고 싶은 마음도 있으니까!
멀리 ’63스퀘어’를 바라보며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첫번째 국기봉을 지났다. 국기대에 비해 꽤 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 정도 바람이면 태극기가 빨리 손상돼서 자주 갈아줘야 할 것 같은데, 누군가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관악산과 삼성산 일대에는 11곳에 국기봉이 있으며, 그 국기봉을 따라 종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멀리 연주대 위에 세워져 있는 기상관측소 안테나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주위 산에는 아직도 눈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면서 산길에도 얼어있는 눈이 보인다. 자칫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겠다. 아이젠을 차야 하나! 조금만 더 버텨보자. 그러다가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아이젠을 차고 조금 가니 눈이 없다. 아이젠을 차고 바위길을 걷는 게 불편하니 다시 벗을 수밖에.
헬기가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관악문을 지났다. 올라오면서 줄곧 왜 관악문이 안 보이지? 다른 코스에 있었나? 궁금해하면서 왔는데, 이곳에 있는 거였구나! 자주 오는 길이 아니니 착각할 수도 있겠다.
평일이긴 해도 산에 오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었는데, 연주대 조금 못 미처 갔을 때 중년여자가 반대쪽에서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길 상태를 물어왔다. 서울대쪽은 눈이 많이 있었다면서. 글쎄, 아이젠을 차기가 조금 애매한 구간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9시54분, 드디어 연주대에 도착해서 정상석 사진을 찍었다. 역시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옆에 세워져 있는 설명문을 보면, “신라 문무와 17년 (677) 의상대사가 관악사(冠岳寺)를 창건하고 연주봉에 암자를 세웠기에 의상대(義湘臺)라고 했지만, 지금은 연주대(戀主臺)라고 불린다. 조선개국 後 고려유신들이 이곳에서 망국 수도였던 개경을 바라보며 그리워했다는 이야기와, 세종대왕의 형들인 양녕대군효령대군이 왕위계승에서 밀려나자 이곳으로 입산해 경복궁을 바라보며 국운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다른 자료를 보면 후자가 사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조선후기 문신 체제공(蔡濟恭 1720~1799)이 지은 <유관악산기(遊冠岳山記)>에서 “옛날 양녕대군이 왕위를 피하여 관악산에 와서 머물 때, 간혹 이곳에 올라와 대궐을 바라보곤 했는데. 대는 연주(戀主)라 하고.”라고 기록했다. 또한, 이곳에는 효령대군의 영정을 모신 효령각(孝寧閣)도 건립돼있다.
그런데, 오늘 처음 안 사실이 있다. 효령각이 독립된 건물인줄 알았는데, 연주암의 부속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연주암에서 관리하는 건물인 것이다. 오늘 보니 처마 밑으로 가족기원 연등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연등은 불교관련 건물에만 달려있다고 생각했는데, 효령각에 연등이 달린 모습을 오늘 처음 봤다.
각설하고, 관악산 정상석 사진을 몇 장 찍고 응진전(應眞殿)을 보러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기도하러 오는 사람 말고는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져 있었지만 나혼자야 어떨까 싶어 무시하고 내려갔다. 역시 오늘은 그곳에도 사람이 없다. 접수처에 앉아 있는 직원 한명, 법당에서 기도하는 스님 한명이 전부였다. 전에는 기도하러 오는 신도들이 꽤 있었는데, 오늘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법당 주위 울타리를 따라 가족기원 붉은 연등이 빼곡히 달려있었다. 연등에 ‘부처님 오신날’이라고 써있는데,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접수처를 슬쩍 보니 연등 하나 다는데 5만원이라고 했다. 연등에 매달린 종이에는 가족 이름이 쭉 써있었다.
응진전은 나한(羅漢)을 모시는 건물이라고 한다. 나한은 수행을 마치고 이미 성자의 위치에 오른 이들을 말하며, 응진은 진리에 응해 남을 깨우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응진전에서 연주대로 다시 올라왔더니 마침 한 사람이 도착했다. 사진이라고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도 찍어달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 여자는 무슨 일인지 정상석에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내려가버린다. 그런 사람을 붙잡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기도 미안해서 나도 그대로 하산했다.
연주암(戀主庵)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망대에서 응진전이 세워져 있는 바위를 다시 바라봤다. 그 경치는 언제 봐도 신비롭다. 그 높은 바위 위에 어떻게 석축을 쌓고 건물을 세웠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냉정하게 보면 안전사고도 꽤 났을 법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까다로운 건물을 완성할 수 있었겠나!
연주암 툇마루에 앉아 커피와 초코바를 먹었다. 레드향도 몇 조각 함께 먹었다. 벽면에 물이나 음료수 말고는 먹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지만, 특별히 냄새나는 것도 아니고 음식물쓰레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어서 미안함을 무릅쓰고.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관악산에 오를 때마다 연주암에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구세군교회 쪽으로 내려가곤 했었는데 오늘은 왼쪽 계단을 따라 과천향교 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 얼마간은 쌓인 눈을 피해가며 조심스럽게 내려갈 수 있었는데 얼마 못 가 눈이 점점 많아져서 만일을 대비해 아이젠을 다시 찼다.
그런데, 얼마 내려가지 않아 눈이 다 녹아 아이젠을 벗었다. 오늘 벌써 몇 번이나 찼다 벗었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요즘 같은 계절에 산행하는 게 좀 까다롭긴 하다. 완전히 녹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통 눈이 쌓여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젠을 찼다 벗었다 하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다.
25분쯤 내려가다가 약수터를 만났다. 조그만 바위 밑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 먹도록 해놨는데, 수질검사 결과 ‘적합’이란 성적서가 붙어있었다. 최근 산에서 봤던 대부분의 약수터 수질검사 결과는 부적합이었는데. 하긴 산속을 흐르는 물이 왜 부적합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유해물질이 있으니 부적합이라고 판단했겠지만.
한참 내려오다 보니 과천시에서 ‘물소리가 잘 들리는 곳’, ‘관악산 자연경관 담는 곳’이란 안내문을 세워놨는데, 조금 뜬금없어 보인다. 내려오는 내내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왔는데, 이곳 물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 같진 않았다. 더구나 안내문 주위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많아서 주변경관을 보기가 더 어려웠다. 이 사람들 여기 와보고 설치한 것 맞나!
과천향교 조금 못 미처 하산을 거의 마친 지점에 ‘고조선 47대 단군’ 설명문이 붙어있었다. 1세 단군 왕검(王儉)은 서기전 2333년 즉위해서 93년간 재위했고, 마지막 47세 단군 고열가(古列加)는 서기전 295년 즉위해서 58년간 재위했다고 돼있었다. 그 기간을 합치면 2,096년이다.
11시36분, 연주암을 출발해서 1시간여 만에 하산을 마치고, 과천향교 (果川鄕校)를 둘러봤다. 홍살문을 지나 놓인 계단 중에 가운데는 신도 (神道)이므로 다니지 말라고 쓰여있었지만 정면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라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설명문을 보니, “과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관악산 기슭에 창건됐다가 숙종 16년(1690) 현재 자리로 옮겼으며, 1959년 잠시 시흥향교로 불리다가 1996년 과천향교로 복원했다.”
외삼문(外三門)을 지나 향교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슨 공사 중인지 명륜당 (明倫堂) 앞에 가림막을 해 놓아서 더 이상 들어갈 수는 없었다. 명륜당 뒤로는 내삼문을 지나 제사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있다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 둘러봐야 할 것 같다.
과천향교를 나와 지하철을 타러 가려는데, 이정표를 보니 과천역과 정부청사역까지의 거리가 비슷하다. 그동안은 정부청사역으로 다녔었는데, 오늘은 과천역으로 가기 위해 왼쪽으로 내려갔다. 과천교회를 지나 계속 내려가다가 아무래도 길이 좀 이상한 것 같아 주민에게 물어보니 과천교회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와 과천교회를 다시 지나치고 왼쪽으로 접어들어 무사히 과천역까지 갈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지하철을 2번(총신대입구역, 군자역) 갈아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