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佛巖山)

by 이흥재

2024년 2월6일(화) 흐림


™ 개롱역~ 군자역~ 공릉역 2번 출구~ 공릉산백세문(1.3km)~ 불암산 정상 (4.6)~ 상계역(3.2) 총 9.1km


요즘은 대부분 화요일에 산엘 간다. 그런데 어제 오후에 눈이 내렸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오늘 가기로 마음 먹었다. 눈이 쌓이면 산길이 미끄러워 조금 위험할 순 있지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 정 힘들다 싶으면 아이젠을 차고 올라가면 큰 문제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집을 나서니 뭔가 내리는 것 같다. 비라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아마도 안개비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아주 약간의 우기(雨氣)가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기대하면서 지하철을 타러 개롱역으로 갔다.


오늘따라 운 좋게 시간을 잘 맞춰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전에 옛 포스코 동료(이규철)를 다시 만났다. 얼마 전에 몇 번 보고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그를 다시 만났지만 짧은 시간에 딱히 얘기할 것도 없어서 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하긴 회사에서도 같은 부서에 있긴 했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던 사이가 아니라서 더욱 얘기하는 게 어색했다.


공릉역에 내려서 2번 출구로 나갔는데, 아직 날이 밝진 않았지만 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우산을 갖고 가긴 했지만 우산을 쓰고 산행하는 건 여간 귀찮은 게 아닐 터였다.


공릉역에서 불암산 산행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릉산백세문까지는 도보로 1.3km쯤 됐다. 처음 왔을 때는 길을 잘 몰라 우왕좌왕 한 적도 있었지만 오늘은 무사히 공릉산백세문(네이버지도에는 ‘불암산백세문’으로 표시돼있다. 하지만 현장에는 ‘孔陵山百歲門’이란 현판이 달려있다)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차들이 계속 달리고 있어서 잠시 기다렸다가 신호가 바뀐 틈을 타서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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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산행 시작이다. 바닥에 눈이 조금 쌓여있지만 포장길인데다 기온이 영하가 아니라서 그런지 미끄럽진 않다. 그래도 언제 상태가 변할지 모르니 최대한 조심하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걸으면서 보니 흐린 날이지만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정말 병풍을 두른 듯하다. 게다가 산에는 눈이 쌓여있으니 더욱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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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04분, 서울둘레길과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서울둘레길 1코스는 도봉산역에서 화랑대역까지인데, 공릉산백세문부터 이곳까지가 서울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었다. 왼쪽으로 가면 서울둘레길로 이어져 도봉산역으로 향하고, 오른쪽길로 가면 불암산을 오를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오른쪽길로 간다.


조금 가다 보니 ‘불암산(佛巖山)의 전설’이란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인데,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하면서 남산을 정하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고 남산이 되고 싶어 한양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의 불암산 자리에 도착해 보니 이미 남산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금강산으로 돌아가려다가 돌아선 채 머물게 됐는데, 그래서 불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세다.”


그런데 ‘전설’치고는 너무 황당하다. 그 내용도 문제지만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온갖 자료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시대에 이런 ‘전설’을 만들어냈다는 게 말이 되나? 너무 궁금해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불암산’에 관한 기사가 있긴 해도, 당연히 이런 ‘전설’은 없다. 아마도 최근에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 같은데, 이걸 설명문이라고 붙여놓은 지자체(노원구)도 참 한심한 노릇이다.


곳곳에 ‘샛길 폐쇄’를 표시하는 구간이 있는데, 나무로 설치해놓은 그 구조물이 참 좋아 보인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 샛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지만 그 구조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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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보인다. 바위가 갈라진 틈에서 나무가 자르는 모습을 가끔 보긴 했지만 이곳은 그 반대다. 그러니까 나무가 자라면서 바위가 갈라졌다. 애초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게 됐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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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51분, ‘불암산성(佛巖山城) 설명문 세워놓은 곳을 지난다. 내용을 보니, “신라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대동지지(大東地志)> 양주조에 ‘검암산 (불암산) 고루는 산 서쪽 봉우리 두 곳에 있으며, 선조 임진년에 의병장 고언백(高彦伯)이 쌓은 것이다’라고 기록돼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봐도 어디가 성벽의 흔적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따라 눈까지 쌓여서 더욱 알아보지 못하겠다. 아마도 여러 곳을 둘러봐야 제대로 보일 텐데,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친다.


09시10분, 불암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거북바위’에 도착했다. 바위 옆에 친절하게 ‘거북바위’란 팻말까지 세워놓았지만, 전에는 거북형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영락없는 거북모양이다. 몸통은 물론 머리까지 완벽해 보인다. 이렇게 큰 거북이야 물론 없겠지만, 축소시켜 놓으면 착각할 만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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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불암산은 특이하게 정상석이 중턱에 있고, 정상에는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전에는 태극기 밑에 까지 밧줄을 잡고 올라갔었는데, 오늘은 미끄러울 까봐 밑에서 사진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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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젊은이 둘이 올라오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몇 장 찍어줬다. 커피를 마시겠냐니까 그러겠다고 했다. 한잔씩 마시라고 했더니 한잔으로 둘이 나눠 마셨다. 계획도 없이 산에 올라온 터라 운동화만 신고, 한 사람은 장갑도 끼지 않아 손이 벌갰다. 올라오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갈 때는 미끄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면서 초코바도 하나 줬더니 덥석 받아 챙겼다. 그리고 이내 나는 하산하기 시작했다.


상계역으로 내려가는 길은 평상시에도 워낙 급경사라 위험한데, 오늘은 눈까지 쌓여서 많이 걱정했다. 다행히 가드레일이 설치돼있고 바위에는 쇠말뚝을 박아 놓아서 크게 미끄럽지는 않았다.


오래 전에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을 제거해 민족혼을 되찾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요즘도 산에 가면 심심찮게 쇠말뚝을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쇠말뚝이 일제가 박아놓은 게 아니라는 의견이 많이 있는데, 등산하면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 쇠말뚝을 누가 설치해놓았든 무슨 상관이랴! 더구나 근거도 없이 일제가 우리의 혼을 끊어놓으려고 박아놓았다는 주장은 다소 황당하긴 하다.

불암산 정상에서 상계역까지는 대력 3.2km다. 그런데 이 또한 이정표마다 거리가 다르다. 물론 올라가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정리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긴 거리표시가 오르내리는데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래도 시간과 돈을 들려 설치해놓은 거라면 정확성을 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


10시, 불암정(佛巖亭)에 도착했다. 불암산에서 상계역으로 내려가는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닌데 불암정을 지나긴 처음이다. 아마도 그동안은 다른 길로 내려갔다 보다. 구석을 보니 ‘2009년 12월에 세웠다’고 조그맣게 써놓았다. 그리고 이정표를 보니 상계역까지 1.75km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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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26분, 무사히 하산해서 상계역에 도착했다. 화장실로 가서 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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