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패산(賜牌山, 552m)

by 이흥재

2024년 2월13일(수) 흐린 後 맑음


™ 회룡역 3번출구~ 회룡탐방지원센터(1.2km)~ 회룡사(1.0)~ 사패산(3.4)~ 삼거리(0.6)~ 의정부시청(2.7) 총 8.9km


오늘은 강원도 강촌에 있는 삼악산엘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제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에 눈이 온다고 했다. 전에는 전철을 타고 갔었는데, 오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 이번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려니까 혹시라도 눈길에 사고가 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레 포기하고 다른 산을 먼저 가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한 산이 사패산이다. 하긴 그 다음번에 가려고 작정했던 산이기도 하다.


사패산 이름에 대해서 조선 선조의 여섯째 떨인 정휘옹주 (貞徽翁主)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란 것과, 산아래 마패를 제작하는 곳이 있어 그 지명이 유래됐다는 2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사(賜)’자로 봐서는 아무래도 전자(前者)가 더 유력해 보인다.


사패산을 올라가는 등산로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요즘 가는 길은 회룡역 3번출구로 나와 회룡탐방지원센터와 회룡사를 지나는 코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물로 이 길로 갔다. 회룡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개롱역에서 전철을 타고 2번(군자역, 도봉산역)이나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회룡역 3번출구를 나와 시내를 한참 동안 걸어 나뭇가지만 앙상한 보호수인 회화나무를 지나고 1.2km 떨어진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는데, 아직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근무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포장된 가파른 계곡길을 따라 회룡사(回龍寺) 방면으로 가고 있는데, 오른쪽 계곡물은 시원하게 흐르고 있지만 왼쪽 산비탈에는 아직도 얼음이 많이 보인다. 오늘 날씨가 꽤 높은 편인데도 아직은 겨울을 보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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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시10분, 오늘도 회룡사에 들렀다. 입구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회룡사(回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末寺)로, 681년(신문왕1) 의상(義湘)이 창건해 법성사(法性寺)라 했다. 여러 번 중창을 거친 後, 1403년(태종3) 태조가 끈질긴 함흥차사(咸興差使)들의 노력으로 노여움을 풀고 귀경한 뒤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찾아왔으므로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해 회룡사라 했다고 한다.” 여기서 ‘회란용가’란 왕의 말과 가마가 돌아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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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설명문 곳곳에 보이는 ‘이성계’란 이름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삼국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왕이름 대신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왕이 둘 있으니 태조(李成桂)와 태종(李芳遠)이다. 아마도 조선 이전에 고려 때부터 벼슬하면서 유명세를 탔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태조는 고려의 유명한 장군이었고, 태종은 1383년(우왕9) 문과에 급제해 밀직사대언(密直司代言)을 지냈다. 그러니 태종은 조선임금 중에서 유일한 과거급제자였다.


나는 전주이씨(全州李氏) 효령대군파(孝寧大君派)다. 효령대군은 세종의 둘째 형이자, 태종의 둘째 아들이다. 그러니 태조는 그의 할아버지가 되며, 태조와 태종 두 임금 모두 우리의 조상 할아버지가 되신다. 그러니 이름을 직접 듣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피휘(避諱)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부르거나 쓸 수 없었다. 이건 지금도 없어진 전통이 아니다.


서구권에서는 조상의 이름을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주니어’니 ‘2세•3세’ 등의 명칭이 자주 나타나고 어른들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른다. 우리처럼 호칭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 관습을 따라 하기 매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미국인과 결혼해서 이민 간 사람이 운영하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다른 사위나 며느리는 장인이나 시부모님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는데, 자기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시부모님 이름을 부를 수 없으며, 앞으로도 못 부를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엣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회룡사를 나와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이정표를 보니 사패산 정상까지 2.7km 남았다. 그렇지만 경사가 가파른데다 바닥에는 아직도 얼음이 많이 깔려 있어서 한발 한발 여간 조심스럽게 걸어야 하는 게 아니다.


사패산에도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깔딱고개가 있다. 지금은 얼음까지 얼어 있어서 상당히 미끄럽다. 다행히 쇠파이프로 가드레일을 설치해놔서 힘겹게 한발씩 오른다. 이럴 때 아이젠을 차면 훨씬 편하겠지만, 전 구간을 차고 가는 게 아니라서 번거롭게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오르기로 했다.


09시02분, 회룡삼거리 쉼터에 도착했는데, 이정표를 보니 오른쪽 방향으로 2.3km 가면 도봉산 최고봉인 자운봉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쪽으로 갈 계획은 없다. 그래서 오른쪽 사패산 방향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을 한참 오르고 나니 다행히 육산(肉山)이다. 평평한 흙길 능선을 걸으니 휴식하는 기분이다.


사패산을 0.6km 남겨둔 지점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의정부시청까지 2.7km다. 회룡역으로 돌아가려면 2.3km를 더 걸어야 하니 내려갈 때는 의정부시청으로 내려가서 전철을 타기로 했다.


멀리 사패산 정상이 보이는 곳에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산을 오를 때 만나는 내리막길은 반갑지 않다. 정상에 도착하려면 그만큼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산이 그렇게 생겼으니 그대로 가는 수밖에. 멀리 보이는 산들은 아직도 눈이 쌓여있어서 하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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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29분, 사패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 사진을 찍고 있는데 바람이 아주 많이 분다. 조금 전에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할까 했는데, 그 사람은 잠시 후에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잠시 앉아 있는데 다른 사람이 보여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보니 내 포즈가 너무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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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정상에 도착했으니 커피라고 한잔 하려는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그냥 내려오다가 왼쪽을 보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산을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바닥이 녹아서 질척거린다. 얼음이 있는 것도 문제지만 질척거리는 길도 좋진 않다. 등산화에도 흙이 많이 묻었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이정표가 없어져서 방향을 모르겠다. 그래서 몇 번을 올라오는 사람들한테 물어봐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의정부시청까지 내려왔는데도 전철역 위치를 몰라서 다시 물어가며 찾아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더 복잡했다. 의정부시청역에서 경전철을 타고 회룡역까지 가서 2번을 더 갈아타고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그런데 한낮인데도 경전철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앉기는커녕 서있을 공간도 부족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다음부터는 자리에 앉을 수 있어서 편안하게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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