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27일 맑음
오늘 산행은 갑자기 검단산으로 결정했다. 지난번부터 춘천의 삼악산을 가려고 했는데, 오늘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영하 기온에 날씨도 흐리다고 해서 또 다시 다음으로 미뤘다. 아니, 핑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검단산엘 가기로 했다.
지난 2021년 3월, 하남검단산역이 개통되면서 이 역을 통해 검단산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긴 했지만,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다 역에서도 한참 걸어야 등산로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도 자동차를 타고 하남벤처센터 옆 주차장(하남시 검단산로 239)에 차를 대고 산행하기로 했다.
여느 때와 같이 새벽(5시45분)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집을 나와 자동차를 타고 주차장에 도착했더니 아직은 6시39분이라 밖은 밝지 않았다. 그래도 길이 보이긴 해서 등산로를 찾아가는데 아무래도 조금 낯설다. 나중에 보니 길을 잘못 든 거였다. 다행히 그 이른 시간에 산에 가는 사람이 있어 얼른 그 뒤를 따라갔다.
막 등산을 시작하려는데 오른쪽에 있던 판자집이 헐려서 터만 남아있다. 전에도 이 집을 이용한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집이 없어지고 쓰레기 봉지들만 주위에 쌓여있었다.
등산로 입구부터 계단이다. 하지만 이젠 익숙하다. 계단을 만들 때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그대로 따르면 된다. 약간의 관절운동이 필요하지만 규칙적으로 걸을 수 있어서 더 편할 수도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그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국전력공사가 설치해놓은 기상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에 도착했는데, 기온은 1도, 습도는 59%였다. 바람이 별로 없는데다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으니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충혼탑을 지나 삼거리에 도착하니 정상까지 2.4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있다. 그리고 그 옆에 세워져 있는 검단산 등산안내도를 보니 등산코스가 5개 표시돼있다. 그 중에 오늘은 현충탑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유길준묘 등산로로 내려올 예정이다. 거리를 보니 올라가는데 4.2km, 내려오는 길은 3.5km로 총 7.7km 거리다.
호국사로 가는 길과 갈리지는 삼거리 입구에 <검단산의 역사와 유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 내용을 보니, “검단산은 하남시 창우동, 하산곡동, 상산곡동과 광주시 일부를 끼고 있다. 산 동쪽에는 팔당호 상류가 있고, 북쪽으로는 한강이 흐른다. 북악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남한산이 이어진다. 서쪽으론 서울을 바라보며 관악산과 마주하고 있는 영산이다. 태종이 1414년(태종14) 검단산 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사냥을 즐겨 했다. 세종 때는 검단산 사냥몰이꾼 2천여 명을 광주에서 징발해 오기도 했다. 검단산은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광주목의 진산(鎭山)”이라고 기록돼있다. 진산은 옛날 도읍이나 성(城) 등의 뒤쪽에 있는 큰 산을 이루던 말로, 그 지역을 호위하는 주산으로 삼아 제사 지내던 곳이다. 17세기 쓰인 유형원의 <동국여지지>에서는 백제승려 검단(黔丹)이 기거했기 때문에 검단상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고, 다산 정약용은 <삼국사기>의 백제 건국신화에 나타나는 동쪽 높은 산이 검단산이며, 북쪽 한수(漢水)는 도미강이라고 주장했다. 도미강은 지금의 검단산 아래 팔당지역으로 추정되며, 도미부인 전설과 관련 있다.”
너덜길을 지나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부터 바닥에 눈이 얼어있다. 군데군데 드러난 바위를 밟으며 조심스럽게 올라가지만 다리에는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그럭저럭 아이젠을 차지 않고도 올라갈 수는 있겠다. 언제 어디까지 올라갔다 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검단산 정상 전 920m 지점에 도착하니 설치해놓은 시계가 7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 옆에 곱돌광산 약수터가 있는데, 수질기준 ‘적합’이다. 그래도 이 추운 날씨에 찬물 마시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그리고 그만큼 갈증나는 것도 아니다.
이곳에도 검단산 안내문이 세워져 있는데, 검단산 유래에 대한 설명이 조금 다르다. “최근 백제사학자나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백제 때 왕이 천신 (天神)에게 제사 지내던 제단으로 추정되는 장방형 석축제단이 발견됐으며, 검단산의 ‘검(黔)’은 ‘신성하다, 크다’란 의미가 있고 단(丹)은 ‘제단’을 의미하고 있어 ‘신성한 제단이 있는 큰 산’이란 뜻으로 백제 한성시대 (서기전18~475) 왕이 이곳에 올라 하늘에 제사 지내던 신성한 산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무리가 따르는 것 같다. ‘검(黔)’의 훈(訓)은 ‘검다’이며, 단(丹)의 훈은 ‘붉다’인데 어떻게 ‘신성한 제단’이라고 할 수 있나? 더구나 제단의 ‘단’은 평탄할 단(壇)을 쓴다. 그러니 차라리 앞서의 승려 검단이 은거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07시45분, 포스코의 후원으로 설치된 솔라스톤(Solar Stone) 조형물 있는 곳에 도착했다. 암석형상에 기반한 친환경 강재구조물로, 태양광 발전으로 비상조명, 충전, 피뢰침 기능을 하는 스마트 쉼터가능을 한다. 하지만 쉴 만한 시간이 아니어서 사진만 몇 장 찍고 다시 산을 오른다.
이어지는 오르막에는 눈이 더 많이 쌓여있다. 계단에 눈이 채워져 가파른 경사로가 됐다. 다행히 옆에 밧줄을 설치해놔서 잡고 올라가니 미끄러지진 않는다.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정상까지 330m, 오른쪽길은 380m로 50m 정도 차이나지만 왼쪽길은 꽤 가팔라 보여서 오늘은 오른쪽 길로 간다. 그렇지만 이 길도 만만치 않다. 바닥에 빈틈없이 하얗게 눈이 쌓여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밧줄에 기대 한발 한발 올라간다.
산곡초교 입구로 내려가는 등산로 삼거리에 다다르니 바람이 많이 분다. 그리고 그 바람은 정상까지 내내 세차게 불어댄다. 다시 계단을 올라 08시13분 드디어 검단산 정상에 도착했다. 6시40분에 주차장을 출발했으니 1시간 반쯤 걸린 셈이다.
정상석과 주위 사진을 찍으려고 장갑을 벗었더니 손이 너무 시리다. 그렇다고 장갑을 낀 채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얼어가는 손을 달래가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하산하려다가 기념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기로 하고 나무벤치에 앉았다. 바람을 맞아가며 얼른 한잔 마시고 하산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려가려는 하산로에도 눈이 많이 쌓여있다. 올라올 때는 다리에 힘을 주면 미끄러지지 않고 어렵게 올라올 수 있었지만, 내려갈 때는 위험방지를 위해 아이젠을 차기로 했다.
조금 내려가니 누군가 앙증맞은 눈사람을 만들어놨다. 저 정도 크기면 꽤 공을 들인 모양새다. 지금은 눈이 얼어서 뭉칠 수 없으니, 눈 온 직후에 만들어놓은 것 같다.
조금 더 내려오다 보니 큰 소나무 가지가 부려져 등산로를 막고 있다. 왜 부러진 거지? 바람 때문인가?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가? 번개라도 맞은 것처럼 나뭇가지가 여러 조각으로 떨어져 있다.
내려오는 길에 대한 2가지 오해를 했다. 하나는 이곳엔 눈이 녹아 있으려니 했고, 올라온 길보다 좀더 완만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둘 다 틀렸다. 눈은 더 많이 쌓여있고, 거의 수직에 가까운 길이다. 이런 곳에서는 아이젠이 필수다. 다행히 나는 지금 아이젠을 차고 있다. 하지만 언제 무슨 사고를 당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정상에서 2km쯤 내려온 지점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몰라 올라오는 사람한테 아래 사정을 물으니 이제부터 눈은 없단다. 그래서 아이젠을 벗었다.
09시05분, 유길준 묘역에 도착했다. 전에는 유길준 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가족묘였다.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이곳은 근대 한국사의 선각자이며 계몽사상가였던 구당 유길준(矩堂 兪吉濬 1856~1914)과 그 직계가족 묘소다. 구당은 한국 최초의 미국 국비유학생으로 <서유견문 (西遊見聞)>과 국내 최초 국한문혼용 문법책인 <대한문전(大韓文典)>을 지었다.” 유길준의 묘는 두 정부인(貞夫仁)과 함께 뒤쪽에 있었다.
그리고 이곳부터 급경사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다행히 지금은 경사로 옆에 계단을 설치해놨지만 이곳에도 눈이 쌓여서 내려가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경사로를 이용했다.
산을 다 내려오고 나니 진흙탕 숲길이 이어진다. 요즘은 언 땅이 녹으면서 흙길은 모두 진흙탕이 되면서 걷기 어렵기 됐다. 샛길로 가보지만 그곳도 축축하다. 그나마 낙엽이 쌓여있으니 조금 나을 뿐이다.
09시25분, 드디어 주차장 옆에 있는 월남전 참전기념탑까지 내려왔다. 탑에는 군인이 어린 두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조각돼있고, 왼쪽 아래에는 “우리는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하여 싸웠노라”고 써있다. 베트남전쟁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남북 베트남이 싸웠던 전쟁으로, 우리나라는 1964년 9월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었지만, 1975년 남베트남의 패배로 전쟁이 끝나면서 1976년 7월 공산주의 베트남이 수립됐다.
예전 어느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이 일을 사과한 적이 있지만, 파병 당시에는 자유수호를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사과해야 할 일인가 생각된다. 요즘은 자꾸만 과거의 일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우리가 평가할 자격이 있나?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서려는데, 기계가 고장 났으니 호출버튼을 누르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버튼을 눌렀더니 차단기를 올려줬다. 그래서 오늘은 주차비를 내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하긴 이곳 주차비가 비싼 곳은 아니라서 별로 부담스럽진 않았었지만 어떻든 오늘은 공짜로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