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종주, 중산리 ~ 천왕봉 ~ 성삼재

by 이흥재

그동안 지리산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성삼재(구례)에서 출발해 종주하거나 백무동(함양)에서 천왕봉까지 다녀온 경우가 다였다. 전부터 중산리에서 올라가는 코스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통편이 복잡해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그동안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막상 다시 한번 다녀오려고 마음먹고 나니 이번에는 새로운 코스로 도전하고 싶어 중산리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게 됐다. 아직만 역시 쉽지 않다. 오며 가며 버스를 각각 2번씩 갈아타야 했다. 성삼재에서 출발하면 천왕봉엘 올라갔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와 한번에 올라올 수 있었는데.


제1일, 2024년 9월24일(화) 중산리~ 천왕봉~ 장터목대피소~ 세석대피소(1박)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원지(산청)로 가는 첫 버스는 새벽 6시에 출발하지만, 집에서 남부터미널로 가는 첫 지하철이 5시34분에 출발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맞출 수 없어 6시40분 버스를 예약해두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개롱역으로 가서 첫 지하철을 기다렸다가 남부터미널로 가서 다시 버스를 기다린 후 드디어 시간에 맞춰 원지행 버스에 올랐다.


이 버스 종점은 진주인데, 이른 시간에 탄 4명 모두 원지까지만 간다고 했다. 그게 흔한 일은 아닌 듯 운전기사도 신기해했다. 프리미엄 버스라 정원이 28명인데도 승차인원이 고작 4명 뿐이니 그것도 드문 일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승객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


버스는 8시15분쯤 죽암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 후 10시10분쯤 목적지인 원지정류소(경북 산청군 신안면 원지로)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음 행선지인 중산리(경북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로 가는 버스가 10시55분에 있기 때문에 매표소에서 승차권을 사서 시간이 될 때까지 하릴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동안 정류소 맞은편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 음료수를 한병 사긴 했다.


시간에 맞춰 중산리행 버스가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꽤 많다. 나는 멀리 때문에 어떻게든 앞자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벌써 누군가 앉아있다. 하지만 염치불구하고 양해를 구한 후 남아있는 앞자리 하나는 차지했다. 이 버스는 완행이라 조그만 마을이 있는 곳마다 여러 번 섰다.


그렇게 버스는 1시간쯤 달려 목적지인 중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곳보다 번화한 곳이다. 편의점(CU)도 크고, 식당과 민박집들도 꽤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걸 바리바리 싸오지 않아도 될 걸 그랬다. 아무튼, 편의점 앞 탁자에 앉아 싸 갖고 간 햄버거를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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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등산로 표시가 안보여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민에게 물어보니 방향을 알려주길래 그쪽으로 가보니 ‘천왕봉 등산로’ 표시가 있고, 곧바로 계단이다. 그리고, 계단을 다 오르니 또 다시 아스팔트 길이 나오고 역시 등산로 표시가 없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가 지나가는 트럭기사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가던 길을 포장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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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르다 보니 산청분소 못 미처 주차건물을 짓고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공사를 시작한 것 같은데, 끝나는 날짜가 없다. 뭐, 이런 공사가 다 있지! 보기엔 커다란 난관이 있는 공사도 아닌 것 같은데, 공기도 없이 공사한다고? 하긴, 나와는 크게 상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계속 올라간다.


출발한지 25분만에 산청분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국립공원 직원이 대피소 예약여부를 확인했다. 세석대피소를 예약했다니까, 그러면 왜 이리로 오냐고 물어서 천왕봉을 올라갔다가 갈 거라고 하니까 그러냐고 했다. 여기서 천왕봉까지는 5.4km란다. 평소대로 걸으면 3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러니까 오후 3시 반 정도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통천길을 지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만 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어디서든 오르막을 만나면 숨차고 다리가 아프지만 그러려니 했다. 12시53분, 칼바위 앞을 지날 때는 모녀가 서로 사진을 찍어주려고 하길래 내가 함께 찍어주고 나도 한컷 부탁했다. 옆에 설명문을 보니, “바위가 칼날 끝부분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는 6.7m”라고 한다. “탐방로의 랜드마크로, 공원관리에서 상징적인 바위”란 설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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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56분, 장터목대피소와 천왕봉 갈림길을 지나 천왕봉을 향해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後 단체로 왔다는 일행을 만났다. 젊은 애들이었는데,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아니면 다른 단체에서 왔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행이 60명 정도 된다고 했다. 처음엔 힘들어 이들 뒤를 쫓아 올라가려고 했는데, 단체로 움직이니 역시 너무 느리다.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이 제치며 올라가는데 그것도 꽤 힘들다.


그런데, 한참 올라가던 애들한테 비상이 걸렸다. 길을 잘못 든 거였다. 본래는 천왕봉이 아니라, 장터목대피소로 가야 했는데, 힘든 계단을 가프게 올라가고 있던 거였다. 이유를 알고 보니 인솔자가 뒤처진 애를 돌보느라고 미처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젊은데 그 정도 쯤이야! 그들은 결국 장터목대피소로 가기 위해 가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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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한라산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1,915m)이라 그런지 경사도가 엄청 심하다. 그리고, 곳곳에 ‘사망사고 발생지점’ 표지판도 설치돼있다. 그 정도 무리하면서까지 산엘 가나 싶지만, 사람은 언제나 욕심이 앞설 때가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내년 1월 완공예정인 로터리대피소(18명 수용)을 지나고, 계곡물을 이용한 식수장에서 시원한 물도 한잔 마신 다음, 법계사(法界寺) 일주문 앞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데, 마주오던 여자가 “인증은 법계사에 들어가서 받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무슨 말이지? 무슨 인증? 아무튼, 모르겠다고 했더니 법계사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2.0km . 3.4km를 2시간 가까이 걸어왔으니 조금 느린 편이다. 그래도 앞으로 1시간 반 정도면 정상까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양쪽 무릎 안쪽이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발을 옮기기가 힘들다. 평지를 그런대로 괜찮은데, 그 거리는 아주 짧다. 나머지는 대부분 계단이나 오르막인데 다리에 힘을 줄 수가 없으니 몇 발자국마다 쉬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개선문까지 1.2km 올라오는데 무려 1시간10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그 다음부턴 더 힘들어졌다. 천왕봉 300m 지점, 500m 올라오는데 또 35분이나 지났다. 중간에 바위틈으로 나오는 시원한 물을 한모금 마신 다음 죽을 힘을 다해 정상에 오른 시간은 오후 4시37분, 산청분소를 12시23분에 통과했으니 4시간14분이나 걸린 셈이다. 빨리 올라왔으면 3시간, 조금 늦는다 해도 3시간 반이면 충분히 올라왔어야 했기 때문에 예정보다 많이 늦어졌다. 오늘 숙박지인 세석대피소에 6시쯤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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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문과 제석봉을 지나 서둘러 하산해 장터목대피소에 다다르니 5시 반이 조금 지났다. 앞으로 1시간 반을 더 가야 오늘 묵을 세석대피소까지 갈 수 있으니, 여기서 저녁을 해서 먹기로 했다. 산행하느라 배도 매우 고팠다. 코펠에 물을 받아 끓여서 컵라면에 붓고 잠시 기다렸다가 햇반을 섞어 대충 저녁을 먹었다. 그나마 갓김치를 갖고 가서 먹었더니 한결 쉽게 먹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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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대피소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물탱크였다. 전에는 계곡을 조금 내려가서 물을 받아와야 했었는데, 지금은 취사장 옆에 물탱크를 설치해놔서 이용하기가 아주 편리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묵을 게 아니라서 편리함을 여기서 끝이다.


저녁 6시쯤 장터목대피소를 떠나 세석대피소로 향하는데, 10분쯤 후에 세석대피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야간산행에 해당하기 때문에 특별관리하기 때문에 전화하노라고 했다. 그리고, 낮에 문자도 보냈는데 왜 연락이 없었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나중에야 확인해보니 낮12시에 문자가 와있었다).


그러면서, 야간산행이 위험할 수 있으니 장터목대피소에 연락해서 잠잘 자리가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곳엔 빈자리가 없으니 어떻게든 세석대피소로 오라고 했다. 이왕 가려고 맘 먹고 출발했으니 문제될 건 없었다.


하지만 6시 반이 지나면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떨지 몰라 출발 전에 헤드랜턴을 착용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거친 산길을 깜깜한 밤에 가야 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으니 땀을 흘리며 묵묵히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려가기만 한 건 아니다. 산길이 대부분 그렇지만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구간이 꽤 많다. 그러면서 잠시 오래 전 군복무 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내가 근무했던 특전사령부는 야외훈련을 나가면 소규모로 흩어져 야영하곤 했는데, 어느날 나와 같은 내무반에 있는 동료가 노루를 한마리 잡았다. 야외훈련을 나가면 탄환을 지급하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 그날은 가까운 곳에서 노루를 보고 한방에 잡게 됐다. 그런데, 그 총소리를 산머너에서 야영하던 대대장이 듣고 무슨 소리냐고 추궁한 끝에, 그러면 뒷다리라도 하나 보내라는 전갈이 왔다. 대충 손질해서 동료들끼리 나눠먹고 뒷다리 하나를 깜깜한 밤에 산을 넘어 갖다 주고 오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도저히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노루를 잡았던 그 동료와 함께 다녀오라고 해서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깜깜한 밤에 산길을 혼자 걷는데도 무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긴 어디선가 부스럭 소리라도 들렸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주위가 아주 고요했다. 그렇게 1시간 반을 꼬박 걸어 저녁 7시 반쯤 드디어 세석대피소에 도착해 직원으로부터 걱정하는 소리와 함께 잠잘 자리를 배정받았다.


전에는 대피소에서 담요를 대여해줘서 그런대로 잠자리가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맨바닥에 침낭만 깔고 자려니 온몸이 배긴다. 발 빠른 사람들은 더러 경량매트를 준비해 갖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침낭 하나가 다였다. 그래도 코까지 골면서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긴 나도 뒤척이면서도 그런대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자긴 했다.


제2일, 9월25일(수) 세석대피소~ 벽소령대표소~ 연하천대피소~ 화개재~ 삼도봉~ 노루목~ 임걸령~ 돼지령~ 노고단고개~ 노고단대피소


5시45분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그전부터 계속 시끄럽다. 아마도 5시와 5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난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일찍 일어났으면 조금 조용해 줘야 할 텐데, 너무 떠들어댄다. 조금이라도 남들 생각해준다면 그렇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아침이다.


엊저녁과 마찬가지로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아침으로 먹고, 6시42분 벽소령대피소를 향해 출발했다. 거리는 6.3km. 아직도 다리가 성친 않지만 어제처럼 힘들진 않다. 하지만 평지나 내리막은 그럭저럭 괜찮다가도 오르막을 만나면 또 다시 힘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리산에서 가장 좋은 풍경인 산 아래 내려와있는 구름이다. 물론 산 위에도 구름들이 많지만, 안개인양 구름인양 하는 그 모습이 신비롭기조차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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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11분, 선비샘을 지난다. 돌담에 대나무 대롱이 하나 꽂혀있고 스테인리스 바가지로 있어서 한잔 마시니 아주 시원하다. 다른 곳에서는 산속에서 물을 마셔도 별로 시원한 걸 모르겠는데, 이곳 지리산에서는 어디서나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좋다. 하긴 그런 샘물을 만나는 게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샘물 위에는 ‘선비샘의 유래’에 대한 있다. “옛날 덕평골에 화전민 노인이 살았다.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서, 죽어서라도 존경 받고 싶어 상덕평 샘물 위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그로부터 샘물을 마시고자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구부려서 누구나 절하는 형상이 됐다.”


덕평봉을 지나 9시34분,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이제 막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도 있고, 대피소 탁자에서 짐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있으니 배가 살살 아프다. 지리산엘 여러 번 왔지만 산행하는 동안 큰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아무래도 화장실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대피소 화장실이 모두 수세식으로 바뀌어 깨끗해졌다. 전에는 안에 들어가면 냄새가 나서 오래 있기가 거북했었는데, 그런 냄새가 사라지니 큰일 보는데도 한결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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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연하천대피소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거리는 3.6km. 오늘 묵을 노고단대피소까지는 아직 14.1km가 남았다. 그러니까 오늘 출발한 세석대피소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20.4km나 된다. 평지 길도 만만치 않은데, 오르내리는 산길이어서 더욱 힘든 코스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 시각은 정각 11시.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벌써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다들 그늘에 앉아 있었는데, 날씨가 그리 덥지 않은 것 같아 양지에 앉았더니 등이 매우 따갑다. 그래도 달리 갈 곳이 없으니 그냥 견디면서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약밥. 조금 부족한 것 같아 매점에서 초코바와 밤양갱을 하나씩 사서 함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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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화개재를 향해 출발하려는데, 끝없는 계단이 이어진다. 400m쯤 올라 이정표를 보니 화개재까지 3.8km 남았다. 그런데 거리표시가 조금 이상하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는 14.1km라고 했고, 연하천대피소까지 3.6km를 걸어왔으니 그 거리만큼 줄어야 할 텐데 이곳 이정표에는 노고단고개까지 10.1km라고 돼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노고단고개에서 대피소까지 1.3km였다. 하긴 계단 지름길은 0.4km다.


12시48분 토끼봉(1,534m)을 지나고, 오후 1시16분 화개재(1,316m) 계단에 앉아 잠시 쉬었다. 뭉게구름을 배경으로 한 앞산 풍경이 산뜻하다. 한낮이라 햇볕이 뜨겁긴 해도 대부분 그늘진 산길을 걸으니 견딜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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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28분, 마의 계단을 또 만났다. 정말 끝없는 계단이 이어진다. 쉬어가며 한참 오르다 보니 ‘500’이란 숫자가 보인다. 평상시라면 그렇게 대단하다곤 할 수 없지만, 어제 오늘 컨디션으로는 오르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 숫자 다음부터 계단이 끝날 때까지 50계단을 더 오르고서야 계단이 끝났다.


다시 24분을 더 걸어 1시간52분, 삼도봉(三道峰)에 도착했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하동•산청•함양과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에 걸쳐 있는데, 그 세 도(峰)가 만나는 곳이 여기다. 커다란 바위 위에 삼각뿔을 설치하고, 경상남도•전라남도•전라북도를 하나씩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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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목(1,480m)을 지나고 임걸령쉼터에서 잠시 휴식한 후에 임걸령에 다다르니 가까운 곳에 샘이 있다는 표시가 있다. 거리는 5m라고 쓰여있지만 내리막이라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배낭을 벗어놓고 잠시 내려갔더니 정말 시원한 물이 있다. 한모금 마시고 병에도 가득 받아서 다시 올라와 배낭을 메고 갈 길을 재촉한다.


피아골삼거리에 설치된 안내문을 보니 돼지령을 지나면서 노고단고개까지 5.6% 경사가 이어진다. 결국 하산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 올라가야 하다니! 그나마 다행인 건 그리 가파르진 않다. 그래도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지니 이 또한 쉽지 않다.


걷다 보니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올 때 계획으로는 내일 아침 일찍 노고단엘 올라갔다 오려고 했었는데, 지금 상태론 무리인 것 같아 아직은 망설이는 중이다.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걸어서 4시 조금 지나 드디어 노고단고개에 도착했다. 노고단 출입을 통제하는 곳에 직원이 있어서 물어보니 아침에 와서 신고하고 노고단엘 올라가면 된다고 해서 별도의 예약은 않았다.


이제 노고단대피소까지만 내려가면 오늘 산행은 끝이다. 이정표를 보니 돌아가는 길은 1.3km,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0.4km다. 하지만 온통 돌로 쌓인 급경사 계단을 내려가는 게 이렇게 힘들고 조심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거리만 보고 택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차여차 10분만에 계단을 다 내려왔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노고단대피소. 그런데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기서 묵는 것은 처음이지만 이곳을 지나면서 봤던 모습이 전혀 아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더 놀랍다. 하나씩 독방이다. 문도 있고 커튼도 달려있어서 개인생활이 철저히 보호된다. 물론 방음까진 아니어도 다른 곳에 비하면 호텔이다. 그래도 마루바닥이라 딱딱하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난방이 되니, 오늘은 침낭을 깔개로 사용하고 그냥 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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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계곡물이 안전하지 않아 생활용수론 쓸 수 있어도 음용수론 곤란하다고 해서 2리터 생수를 한병 샀다. 그리고, 쿠팡에서 구입한 ‘핫앤쿡 쇠고기비빔밥’을 처음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이라 설명문을 열심히 읽었다. 하긴 알고 나면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을 테니까. 그래도 신기하긴 하다. 어떻게 만든 발열체길래 찬물만 부으면 뜨거워지나? 이유를 몰라도 결과만 만족하면 그만이다. 이번에도 갖고 간 갓김치를 곁들이니 한결 맛있다.


저녁을 다 먹고 난 후에도 아직 7시밖에 안됐다. 핸드폰에 받아둔 동영상이 몇 개 있긴 해도 왠지 지루하다. 그렇다고 인터넷이 안되니 유튜브를 볼 수도 없다. 에이, 그냥 자자. 내일 아침에 노고단 올라가는 걸 포기했으니 6시 반에 알람을 맞췄다. 8시에 잔다 해도 장장 10시간 이상 자는 셈이다. 그리고, 한밤중에 화장실 가기 위해 한번 일어난 것 말고는 그런대로 잠을 잘 잤다.


제3일, 9월26일(목) 노고단대피소~ 성삼재~ (버스) ~ 구례시외버스터미널~ (버스) 서울남부터미널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초코바와 밤양갱 하나씩으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계곡물로 양치질 한 후 다시 숙소로 돌아가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성삼재에서 구례로 가는 버스는 10시에 있고, 대피소에서는 9시 전에 나가야 한다고 했으니 최대한 버텨볼 참이다. 그렇게 8시가 조금 지나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정표를 보니 성삼재로 내려가는 길이 또 두 갈래다. 돌계단을 따라가면 2.1km, 편안한 길로 가면 3.0km다. 이번엔 편안한 길을 택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정표가 이상하다. 2.1km 내려온 위치에 있는 이정표는 성삼재까지 1.8km란다. 그 사이 900m가 늘어났다. 도대체 어떻게 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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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52분, 무넹기란 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 이정표는 노고단고개 1.0km, 성삼재 1.7km다. 올 때는 노고단고개를 지나 노고단대피소엘 왔는데, 노고단고개로 질러가는 길이 있나? 큰 의미는 없지만 아무튼, 이곳저곳 숫자가 계속 다르니 헷갈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무넹기는 ‘무넘기’의 전라도 방언이고, 무넘기는 ‘논에 물이 알맞게 고이고 남은 물이 흘러 넘쳐 빠질 수 있도록 만든 둑’이라는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순 없었다.


9시11분, 성삼재(1,090m)에 도착했다. 이곳 이정표에도 노고단고개까지 2.6km로 돼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질러가는 길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 다시 여기 올지 알 수 없으니 별 의미는 없지만.


성삼재에는 넓은 주차장과 함께 커피판매점(다른 음식들도 판다)과 e마트24, 그리고 블랙야크 매점이 있었다. 그런데, 건물이름이 ‘성삼재휴게소’라고 돼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정말 휴게할 수 있는 나무탁자 몇 개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앞에 ‘성삼재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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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진한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지리산 심원계곡(深源溪谷)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생활 했던 곳을 달궁이라 했다. 이때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해서 팔랑재(八郞峙)라 했는데, 서쪽은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여서 삼성(三姓)의 장군을 배치해 지키게 해서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됐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구례에서 10시에 출발한 버스가 10시40분쯤 도착했지만, 바로 타지 못하고 다시 기다렸다가 탑승하니 10분쯤 있다가 출발했다. 버스는 30분쯤 달려 화엄사에서 잠시 정차한 후 10분 더 가서 구례시외버스정류장에 멈췄다. 그리고 내리면서 요금을 지불하는데 무려 5천원이다. 거리에 비해 비싼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은 11시도 되지 않았지만, 이른 점심을 먹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처음엔 갈비탕 간판이 보여서 들어갔더니, 아직은 1인분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없다고 했다. 그럼 언제부터 먹을 수 있다는 거야?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다른 식당을 찾아 잠시 돌아다니다가 뼈다귀탕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문했는데, 기대했던 맛은 아니다. 뼈에 붙어있는 뼈가 너무 질기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깨끗하게 비우고 식당을 나와 다시 버스터미널로 갔다.


서울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11시50분 걸로 예약해놓았으니 또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 맞춰 도착한 버스를 타고 올라오다 이인휴게소(공주)에 한번 들른 後 무사히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교통정체가 심했지만, 다행히 버스전용차선을 이용했기 때문에 늦지 않게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직도 쥐가 났던 곳에 통증이 오지만, 하루쯤 지나면 회복될 테니까 큰 염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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